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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알론소 — 두 번의 챔피언, 끝나지 않은 집념의 도전

페르난도 알론소

사진: Lukas Raich,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어떤 챔피언은 왕좌를 차지한 뒤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페르난도 알론소는 달랐다. 두 번의 F1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모터스포츠의 지도 전체를 무대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갔다.

3줄 요약
1알론소는 2005·2006년 F1 월드챔피언을 차지하며 미하엘 슈마허 독주 시대를 종식시킨 세대 최고의 드라이버로 평가받는다.
22018년 F1을 떠난 뒤 WEC 르망 24시간 우승, 데이토나 24시간 우승 등 ‘트리플 크라운’ 달성을 향한 도전을 이어갔다.
32023년 애스턴마틴으로 복귀해 시즌 초반 표창대를 휩쓸며 건재함을 증명했고, 2026시즌을 F1 마지막으로 여긴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글은 페르난도 알론소라는 한 인간이 정상에 오른 뒤에도 왜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는지를 따라간다. 챔피언십 타이틀을 손에 쥔 순간부터 WEC 르망의 밤을 달리고, 인디애나폴리스의 타원 트랙에서 땀을 흘리고, 다시 F1 그리드로 복귀하기까지 — 알론소의 여정은 단순한 레이서의 커리어가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하는 집념의 서사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펼쳐 본다.

한눈에 보는 페르난도 알론소
생년월일1981년 7월 29일, 스페인 아스투리아스주 오비에도
F1 월드챔피언십2005년·2006년 (르노)
F1 통산 그랑프리 출전400회 이상 (현역 기준 역대 최다 수준)
르망 24시간 우승2018·2019년 (토요타 가주 레이싱)
현 소속팀애스턴마틴 아라곤 F1 팀 (2023~)
페르난도 알론소 — 두 번의 챔피언, 끝나지 않은 집념의 도전 · 사진 Lukas Raich,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오비에도 소년, 세계의 정상에 서다

페르난도 알론소 디아스는 1981년 7월 29일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소도시 오비에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준 카트를 타며 레이싱에 입문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드러냈고, 10대 중반에 이미 유럽 카트 챔피언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스페인 포뮬러 니사, F3000을 거쳐 2001년 미나르디로 F1 데뷔를 이루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열아홉이었다.

2003년 르노에 합류한 알론소는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당시 F1 역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2005년, 미하엘 슈마허와 페라리가 압도적으로 군림하던 F1 판도를 뒤집으며 월드챔피언에 등극한다. 스물세 살의 나이로 거머쥔 타이틀이었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슈마허의 도전을 꺾고 2연패를 달성하며 그 세대 최고의 드라이버라는 호칭을 굳혔다.

알론소의 레이싱 스타일은 기술적 정교함과 공격적 판단력의 조합으로 유명하다. 특히 타이어 관리 능력과 레이스 페이스를 조율하는 감각은 동시대 드라이버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다. 두 번의 챔피언십은 단순한 머신 우위의 산물이 아니라 알론소 개인의 역량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스물세 살에 F1 최연소 챔피언. 알론소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알론소 이전의 스페인 F1
알론소가 챔피언에 오르기 전까지 스페인은 F1 세계챔피언을 배출한 적이 없었다. 그의 등장은 스페인 모터스포츠 역사를 새로 쓰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스페인 내 카트·주니어 포뮬러 저변 확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상 이후의 고통 — 맥라렌, 페라리, 그리고 끝없는 표류

페르난도 알론소 · 사진 Lukas Raich,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두 번의 챔피언 이후 알론소의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2007년 맥라렌으로 이적한 그는 신인 루이스 해밀턴과 같은 팀에서 충돌하며 시즌을 혼란 속에 보냈다. 당시 스파이 게이트로 불린 팀 내 기밀 유출 사태와 드라이버 간의 팽팽한 갈등은 F1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기록된다. 알론소는 결국 그해 팀을 떠나 르노로 복귀했고, 2008년 두 차례 우승을 챙겼지만 챔피언십 경쟁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페라리에서 보낸 5년은 알론소의 커리어에서 가장 극적인 시기였다. 그는 페라리라는 상징적인 팀에서 매 시즌 경쟁력 이상의 성과를 끌어냈지만, 챔피언십 타이틀은 번번이 손끝에서 빠져나갔다. 2010년 아부다비 최종전, 2012년 브라질 최종전 — 두 번의 최종전에서 타이틀을 놓친 장면은 알론소가 얼마나 끝까지 싸우는 드라이버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머신이 받쳐주지 않아도 끝까지 포디엄을 지키는 그의 능력은 이 시기 완전히 검증되었다.

2015년, 알론소는 다시 맥라렌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혼다 엔진과의 파트너십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품고서였다. 그러나 혼다 엔진은 기대와는 달리 신뢰성과 출력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고, 알론소는 그 어떤 시즌보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수차례의 리타이어와 예선 최하위권 성적표는 챔피언이라는 타이틀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알론소는 좌절하는 대신 끊임없이 팀을 독려하고 한계 이상의 레이스를 펼치며 관중의 경의를 받았다.

세 번의 챔피언십 준우승
알론소는 2010년, 2012년, 2013년 세 차례 챔피언십 준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2012년 페라리 F2012는 시즌 초 경쟁력이 크게 뒤처진 머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론소는 막판까지 타이틀 레이스를 이끌었다. 이는 그의 드라이버 역량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방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F1을 떠나 세계로 — WEC와 르망의 밤을 달리다

2018년 시즌을 끝으로 알론소는 공식적으로 F1 그리드를 떠났다. 많은 이들이 이 결정을 은퇴로 해석했지만, 알론소 본인은 달랐다. 그는 F1을 떠난 뒤 무대를 모터스포츠 전체로 넓혔고, 자신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도전들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그 중심에는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명예로운 도전 중 하나인 ‘트리플 크라운’ — F1 모나코 그랑프리, 르망 24시간, 인디500 우승 — 이 있었다.

알론소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에 합류해 WEC(세계 내구 레이스 챔피언십) 무대에 뛰어들었다. 세바스티앙 부에미, 나카지마 카주키와 함께 팀을 이룬 알론소는 2018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서킷 드 라 사르트의 밤을 24시간 동안 달리는 레이스는 F1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극기였다. F1에서 최고의 랩타임을 다투던 그가 이제는 팀원들과의 교대, 정밀한 페이스 관리,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고와 기계적 결함을 넘어서야 하는 장거리 서사를 써야 했다.

2019년 르망 24시간에서도 같은 팀으로 다시 우승을 달성하며 알론소는 연속 르망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추가했다. 같은 기간 그는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도 출전해 우승 트로피를 보탰고, 인디500에도 두 차례 도전장을 내밀었다. 인디500 우승만 이루어진다면 트리플 크라운 완성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었지만, 두 번의 도전 모두 완주에 실패하며 아직은 미완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 기간 알론소가 보여준 다양한 카테고리 적응력과 레이스 지능은 그를 단순한 F1 드라이버가 아닌, 진정한 모터스포츠의 만능 선수로 재정의하게 만들었다.

‘르망의 밤을 두 번 정복한 챔피언. F1을 떠난 뒤에도 알론소의 엔진은 꺼지지 않았다.’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이란?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은 F1 모나코 그랑프리, 르망 24시간,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스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상 이 세 대회를 모두 제패한 드라이버는 그레이엄 힐 단 한 명뿐이다. 알론소는 모나코 우승(2006)과 르망 2회 우승(2018·2019)을 달성해, 인디500만 남겨두고 있다.

복귀, 그리고 400번째 그랑프리 — 숫자가 쌓아 올린 역사

페르난도 알론소 · 사진 Andrew Basterfield,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2021년, 알론소는 다시 F1으로 돌아왔다. 알파인(구 르노) 팀과 손잡고 그리드에 복귀한 그는 노장의 귀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도 세대 교체된 팀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력을 유지했다. 2년간의 알파인 시절은 때로는 팀 내부와의 갈등이 보도되기도 했지만, 알론소가 레이서로서 여전히 정점에 있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2022년 말, 알론소는 전통 명문 애스턴마틴으로의 이적을 선언했다. 이 소식은 F1 커뮤니티에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애스턴마틴은 2023시즌 새로운 팩토리와 인프라를 갖추고 야심찬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 상태였고, 알론소라는 거물의 합류는 그 계획에 강력한 신호탄이 되었다. 레이싱 팬들은 과연 40대에 접어든 알론소가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그리고 2023시즌 개막전, 알론소는 모든 의구심을 잠재웠다.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포디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시즌 초반 내내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팀과 함께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그는 F1 역사상 400번째 그랑프리 출전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에도 도달하게 된다. 400번의 그랑프리를 달려온 드라이버,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고통과 환희,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새겨져 있다.

AMR23 — 애스턴마틴의 야심
알론소가 2023시즌 몰았던 AMR23은 레드불 출신 설계 인력과 새로운 풍동 시설을 바탕으로 탄생한 머신이었다. 창립 110주년을 맞은 애스턴마틴은 이 머신으로 시즌 초반 레드불 다음가는 경쟁력을 보여주었고, 알론소와의 시너지는 팀 역사상 손꼽히는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미 챔피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레이서이기도 하다. 그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 페르난도 알론소, 복귀 관련 인터뷰에서의 발언 취지

알론소를 알론소답게 만드는 것 — 정신력과 레이스 IQ

페르난도 알론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정신적 강인함이다. F1은 물리적 체력만큼이나 극도의 집중력과 압박 속에서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정신력이 요구되는 스포츠다. 알론소는 수십 년간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드라이버로 정평이 나 있다. 결코 유리한 머신을 가져본 적이 많지 않았음에도, 그는 언제나 기대치를 초과하는 성적을 만들어냈다.

그의 레이스 운영 능력은 특히 타이어 전략과 맞물릴 때 빛을 발한다. 안전카 구간, 날씨 변화, 피트스톱 타이밍 — 모든 변수를 두고 알론소는 팀 엔지니어들과 때로는 그들을 압도하는 수준의 판단을 내린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전직 팀 관계자들이 인터뷰에서 ‘그는 레이스 도중 머릿속으로 전체 레이스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그의 레이스 IQ는 독보적으로 거론된다.

나이의 벽을 이야기할 때 알론소는 항상 반례로 등장한다. 40대에도 F1 포디엄을 쟁취한 드라이버는 현대 F1 역사에서 극히 드물다. 철저한 체력 관리와 지속적인 훈련,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스를 향한 불꺼지지 않는 욕망이 그를 또래의 은퇴한 챔피언들과 다른 길로 이끌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아직 배울 것이 있다고 느끼는 한 달릴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머신이 아니라 드라이버가 이기는 레이스가 있다. 알론소의 커리어가 그 증거다.’

2026년, 마지막 챕터가 될 것인가?

페르난도 알론소 · 사진 Mike Roberts from London, United Kingdom,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2026시즌을 두고 알론소의 F1 마지막 챕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2026년은 F1 역사에서 파워유닛 규정이 대폭 바뀌는 해이기도 하다. 새로운 하이브리드 규정이 도입되면서 팀 간 경쟁 구도가 다시 한번 재편될 예정이고, 알론소는 이 격변의 시즌에서도 애스턴마틴과 함께 경쟁력을 찾으려 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그가 F1 이후의 행보로 GT 레이싱으로 무대를 넓힐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IMSA에서 활동하는 라이트 모터스포츠 같은 팀이 2027년 IGTC 풀 시즌 참가를 목표로 준비 중인 상황과 맞물려, 알론소가 또 다른 카테고리에서 새 페이지를 열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그러나 이는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니며, 알론소 본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

분명한 것은, 알론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정에는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반드시 담겨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단순히 레이스 수를 채우기 위해 달리는 드라이버가 아니다. 모든 참전에 의미와 목표를 담고, 결과로 증명하려는 태도 — 그것이 알론소를 알론소이게 만드는 본질이다. 2026년이 마지막이든 아니든, 그의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계속 달릴 것이다.

2026 F1 파워유닛 규정 변화
2026년부터 F1은 기존 1.6리터 V6 터보 하이브리드 유닛을 대폭 개편한 새 파워유닛 규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전기 모터의 비중이 높아지고 MGU-H가 폐지되는 등 기술적 변화가 크며, 이로 인해 기존 강자와 신규 참전 제조사 간의 경쟁 구도가 새롭게 형성될 전망이다.

한국 독자 렌즈 — 알론소와 한국이 만나는 지점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페르난도 알론소는 각별한 존재다. 2010년대 초·중반 F1의 한국 그랑프리 시대가 겹치면서, 알론소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을 달린 드라이버로 국내 팬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전남 영암에서 열렸던 코리아 그랑프리(2010~2013)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F1이라는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가 한국 땅을 밟은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당시 페라리 머신을 몰고 영암을 달리던 알론소의 모습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알론소의 커리어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한국의 레이싱 지망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비록 한국 드라이버가 F1 정규 그리드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알론소처럼 작은 도시 출신으로 국가 모터스포츠 인프라의 지원 없이도 세계 정상에 오른 사례는 꿈을 키우는 이들에게 하나의 나침반이 된다. 실제로 모터스포츠는 국가적 색채와 투자를 강하게 반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페인의 경우 알론소 이후 모터스포츠에 대한 국내 관심과 저변이 급격히 넓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한편 애스턴마틴 팀의 성장 스토리와 알론소의 복귀는 국내 자동차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로 잘 알려진 애스턴마틴이 F1 무대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자동차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시장에서도 애스턴마틴 차량에 대한 관심이 꾸준한 만큼, F1 무대에서 알론소가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에도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는다.

집념이라는 이름의 유산

페르난도 알론소 · 사진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Ygrek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페르난도 알론소의 커리어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집념’이 가장 가까울 것이다. 두 번의 챔피언십 이후 세 번째 타이틀을 끝내 손에 쥐지 못했다는 사실은, 반대로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그것을 향해 싸워왔는지를 역설한다. 챔피언이 되는 것이 위대한 드라이버를 만드는 유일한 기준이 아님을 그는 커리어 전체로 증명했다.

르망의 밤을 정복하고, 데이토나의 새벽을 달리고, 인디애나폴리스의 타원을 꿈꾸는 — 알론소는 F1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스스로 허물고 모터스포츠 전체를 자신의 무대로 삼았다. 그것이 바로 그를 동시대 가장 다채로운 레이서로 만드는 이유다. 루이스 해밀턴이 F1 안에서의 지배력을 쌓아갔다면, 알론소는 모터스포츠라는 더 넓은 세계에서 자신의 깊이를 파나갔다.

그리고 그 집념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40대의 나이에도 포디엄을 오르고, 새로운 규정과 새로운 팀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최전선을 지키는 알론소. 그의 다음 챕터가 어디서 펼쳐지든, 모터스포츠 역사는 이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한국 팬의 시선

한국 팬들에게 알론소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의 기억과 함께한 드라이버다. 2010년부터 4년간 전남 영암에서 열린 코리아 그랑프리는 F1이 한국 땅을 달린 유일한 역사였고, 당시 페라리를 몰고 폼진 랩을 선보인 알론소의 모습은 그 시절 F1에 빠졌던 국내 팬들의 뇌리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또한 알론소의 커리어는 모터스포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에서도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국내 레이싱 지망생들에게 하나의 영감이 된다. 스페인이 알론소를 통해 모터스포츠 저변을 넓혔듯, 한국도 언젠가 F1 그리드에 태극기를 올릴 날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생생한 교과서다.

어쩌면 알론소의 가장 위대한 기록은 수치로 된 챔피언십 숫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몇 번이고 그리드 가장 앞에 줄을 서서, 불이 꺼지는 순간 온몸을 내던진 한 인간의 이야기다. 르망의 깊은 밤을 달리면서도, 영암의 낯선 서킷을 처음 밟으면서도, 400번째 그랑프리 스타트라인에 서면서도 — 그는 언제나 같은 눈빛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그리고 아마 그 눈빛은, 마지막 깃발이 내려지는 그날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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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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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르난도 알론소 — Lukas Raich,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페르난도 알론소 — Lukas Raich,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페르난도 알론소 — Andrew Basterfield,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페르난도 알론소 — Mike Roberts from London, United Kingdom,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페르난도 알론소 —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Ygrek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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