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바퀴. 58바퀴 중 마지막 한 바퀴가, 7년을 이어온 왕조와 8년을 기다린 도전자의 운명을 통째로 뒤집었다. 2021년 12월 12일, 야스 마리나의 조명 아래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한 레이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도 F1 팬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논쟁하는, 포뮬러 1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가장 극적인 결말이었다.
이 글은 그 마지막 몇 분 동안 트랙과 무전기 너머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차분히 따라간다. 누가 옳았고 누가 억울했는지를 판결하려는 글이 아니다. 규정과 판단, 운과 전략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 최고의 순간과 다른 사람의 가장 쓰라린 패배를 동시에 만들어 냈는지 — 그 한 시간 남짓의 드라마를 복기하는 기록이다.
369.5 대 369.5 — 한 점도 앞서지 못한 채 맞은 최종전
2021시즌은 시작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7회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과 메르세데스의 왕조, 그리고 그것을 끝내려는 24세의 막스 베르스타펜과 레드불. 두 사람은 실버스톤에서 충돌했고, 몬차에서 다시 부딪혔으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코너마다 신경전을 벌였다. 시즌 22전을 모두 치르고 마지막 한 경기를 남긴 시점, 둘의 점수는 소수점까지 똑같은 369.5점이었다.
규정상 동점이면 시즌 우승 횟수가 많은 쪽이 챔피언이 된다. 그 해 베르스타펜은 9승, 해밀턴은 8승. 즉 아부다비에서 둘 중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챔피언이 되는, 더없이 단순하고 잔인한 구도였다. 무승부도, 계산도 없었다. 앞서 들어오는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토요일 예선에서 먼저 웃은 쪽은 베르스타펜이었다. 그는 1분 22초109의 폴 포지션을 기록했고, 해밀턴은 그 옆 2번 그리드에 섰다. 흥미로운 건 타이어였다. 베르스타펜은 예선 2차에서 소프트 타이어로 결승 출발을 준비한 반면, 해밀턴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미디엄으로 출발선에 섰다. 이 작은 선택이 결승 초반의 흐름을 갈랐다.
충돌로 얼룩진 시즌 — 실버스톤에서 몬차까지
아부다비의 마지막 한 바퀴가 그토록 폭발적이었던 이유는, 그 한 바퀴 안에 한 시즌 내내 쌓인 감정이 응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021년 내내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코너 하나를 두고 물러서지 않는 맞수였다.
첫 번째 분수령은 7월 영국 실버스톤이었다. 1번째 바퀴, 해밀턴이 고속 코너 콥스(Copse) 안쪽으로 파고들며 추월을 시도했고, 두 머신이 접촉했다. 베르스타펜은 그대로 방호벽에 강하게 부딪혀 리타이어했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해밀턴은 페널티를 받고도 그 경기를 우승했다. 레드불은 “위험한 주행”이라며 격분했고, 메르세데스는 “정당한 레이싱”이라 맞섰다. 시즌의 공기가 이때부터 달라졌다.
두 달 뒤 이탈리아 몬차에서는 더 아찔한 장면이 나왔다. 피트를 나오던 해밀턴과 코스 위의 베르스타펜이 첫 시케인에서 나란히 진입하다 충돌했고, 베르스타펜의 머신이 해밀턴의 머신 위로 올라탔다. 이때 콕핏을 감싸는 보호 장치 헤일로(halo)가 해밀턴의 머리를 지켜 큰 부상을 막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두 사람은 그 경기에서 나란히 리타이어했다. 시즌은 점점 “누가 더 빠른가”를 넘어 “누가 먼저 물러서는가”의 싸움이 되어 갔다.
그러니 아부다비에서 둘이 정확히 동점으로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 해 동안 서로에게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은 결과가, 소수점까지 똑같은 점수표로 나타난 것이다.
해밀턴이 지배한 57바퀴
출발과 동시에 해밀턴이 더 좋은 그립으로 1번 코너 바깥쪽을 돌아 선두로 치고 나갔다. 베르스타펜이 코너를 가로질러 따라붙으려 했지만, 해밀턴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뒤로 레이스는 사실상 한 방향으로 흘렀다. 해밀턴은 안정적으로 간격을 벌렸고, 중반에는 11초 이상 앞서며 여덟 번째 챔피언 트로피를 향해 순항했다.
레드불은 전략으로 흔들어 보려 했다. 일찍 피트인해 새 타이어로 추격하는 이른바 “언더컷”을 시도했지만, 메르세데스의 페이스가 워낙 좋아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50바퀴를 넘긴 시점, 중계 화면의 거의 모두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챔피언은 해밀턴이다.
레이스의 95퍼센트 동안, 트로피는 해밀턴의 것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5퍼센트였다.
53랩, 니컬러스 라티피의 충돌
운명은 예고 없이 끼어들었다. 53번째 바퀴, 중위권에서 순위 다툼을 벌이던 윌리엄스의 니컬러스 라티피가 14번 코너 출구에서 미끄러지며 벽을 들이받았다. 머신 잔해가 트랙에 흩어졌고, 안전을 위해 세이프티카가 투입됐다. 이 순간, 11초 넘게 벌어져 있던 두 챔피언 후보의 간격이 의미를 잃었다. 세이프티카 뒤로 모든 차가 한 줄로 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팀의 처지가 갈렸다. 해밀턴은 선두였기에 피트에 들어가면 자리를 잃을 위험이 있어 낡은 하드 타이어로 트랙에 머물렀다. 반면 2위 베르스타펜은 잃을 자리가 없었다. 레드불은 곧장 그를 불러들여 가장 빠른 새 소프트 타이어로 갈아 끼웠다. 단, 재출발이 이뤄지지 않고 그대로 레이스가 끝난다면 이 승부수는 무의미했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과연 다시 초록불이 켜질 것인가.
단 한 바퀴 — 레이스 디렉터의 결정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선두 그룹과 뒤처진 “랩 다운” 차량들이 뒤섞여 있었다. 해밀턴과 베르스타펜 사이에도 이미 한 바퀴 뒤진 차 다섯 대가 끼어 있었다. 규정상 이 차들을 정리하는 절차가 있는데, 처음 레이스 컨트롤은 “추월시키지 않겠다”고 안내했다. 그대로라면 재출발의 시간이 부족해 레이스는 세이프티카 뒤에서 끝날 가능성이 컸다. 그것은 곧 해밀턴의 챔피언을 의미했다.
그때 무전이 빗발쳤다. 레드불의 크리스천 호너는 레이스 디렉터 마이클 마시에게 “저 뒤처진 차들을 비켜달라”고 요청했고, 메르세데스의 토토 볼프는 정반대로 절규했다. 곧이어 레이스 컨트롤의 판단이 번복됐다. 해밀턴과 베르스타펜 사이에 낀 다섯 대만 추월해 빠지도록 지시가 내려왔고, 세이프티카는 “이번 랩을 끝으로” 피트로 들어간다는 안내가 떴다. 정확히 마지막 한 바퀴를 녹색 깃발 아래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이클, 이건 옳지 않아요!” — “토토, 이건 모터레이스예요, 알겠어요?”
— 메르세데스 토토 볼프와 레이스 디렉터 마이클 마시의 무전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왜 모든 랩 다운 차량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낀 다섯 대만 골라 추월시켰는가. 둘째, 통상보다 빠르게 세이프티카를 거둬들여 굳이 마지막 한 바퀴의 정면 승부를 만들었는가. 어느 쪽이든, 그 판단이 없었다면 결과는 정반대였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규정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당시 세이프티카 관련 조항은 “랩 다운 차량들”의 추월 절차를 규정하고 있었는데, 표현과 적용 사이에 해석의 틈이 있었다. 모든 랩 다운 차량을 정리한 뒤 한 바퀴를 더 도는 것이 통상적 절차였지만, 이날은 일부 차량만 보내고 곧바로 재출발에 들어갔다. 메르세데스가 “규정대로라면 그날 재출발은 불가능했어야 한다”고 항의한 근거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반대편의 논리도 존재한다. 세이프티카 뒤에서 챔피언이 결정되는 것은 스포츠로서 가장 김빠지는 결말이며, 레이스 디렉터에게는 “가능하면 녹색 깃발 아래 경기를 끝내라”는 일반 원칙이 부여돼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규정의 문구”와 “레이스를 살리려는 재량” 사이의 충돌이었고, 그래서 어느 한쪽도 상대를 완전히 설득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논쟁이 이어진다.
무전기 너머의 사람들
이 레이스가 단순한 스포츠 영상이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로 기억되는 이유는, 중계 카메라가 트랙뿐 아니라 양 팀의 피트월을 동시에 비췄기 때문이다. 같은 순간, 두 가라지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레드불 쪽에서는 안도와 환희가, 메르세데스 쪽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침묵이 흘렀다.
무전기는 그 감정의 통로였다. 메르세데스의 토토 볼프 대표는 레이스 디렉터에게 직접 “이건 옳지 않다”고 호소했고, 레드불의 크리스천 호너 대표는 정반대로 “뒤처진 차들을 비켜달라”고 요청했다. 두 사람은 한 무대 위에서 정확히 반대편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스포츠의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그 뒤에는 늘 이렇게 사람의 판단과 감정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이 장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 준 적도 드물다.
체커기를 넘은 직후 베르스타펜의 무전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수년간 그를 따라다니며 혹독하게 키운 아버지 요스 베르스타펜이 가라지에서 눈물을 보였고, 팀 전체가 무전망 위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반대편에서 해밀턴은 짧게 “좋은 레이스였다”고만 답한 뒤 무전을 닫았다. 그 절제된 한마디가, 어떤 격한 항의보다도 그날의 상실을 더 크게 들리게 했다.
타이어 한 세트가 가른 챔피언
마지막 바퀴, 조건은 너무나 불공평했다. 해밀턴의 타이어는 수십 바퀴를 달린 낡은 하드. 베르스타펜의 타이어는 방금 끼운 새 소프트. 드라이버의 기량으로 메우기엔 격차가 컸다. 베르스타펜은 5번 코너 진입에서 안쪽으로 파고들어 해밀턴을 추월했고, 해밀턴은 마지막 한 바퀴 내내 따라붙었지만 끝내 되돌려놓지 못했다.
체커기가 내려졌다. 막스 베르스타펜, 네덜란드 역사상 첫 포뮬러 1 월드챔피언. 무전기 너머로 터져 나온 그의 환호와, 같은 순간 메르세데스 가라지에 내려앉은 침묵은 이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두 감정을 한 화면에 담았다. 해밀턴은 쿨다운 랩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웠다”며 상대를 축하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상실이 배어 있었다.
한 사람에게는 평생의 꿈이, 다른 사람에게는 손에 쥐었던 트로피가 — 같은 1분 안에 결정됐다.
그 후 — 항의, 그리고 레이스 디렉터의 경질
메르세데스는 경기 직후 두 건의 항의를 제기했지만 심판진은 이를 기각했다. 팀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가 12월 16일 이를 철회했다. 결과는 그대로 유지됐고, 베르스타펜의 챔피언은 공식 기록에 남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FIA는 사건을 조사한 끝에, 세이프티카 운영 과정에서 “인적 오류(human error)”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레이스 디렉터가 “선의로(in good faith)” 행동했으며 레이스와 챔피언십 결과는 “유효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2022년 2월 17일, FIA는 마이클 마시를 레이스 디렉터 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후 세이프티카 관련 규정도 더 명확하게 손질됐다.
승자의 자리에서 보면 이 우승의 무게는 더 크다. 베르스타펜은 이 타이틀로 네덜란드 최초의 F1 월드챔피언이 됐고, 레드불에는 2013년 제바스티안 페텔 이후 8년 만의 드라이버 챔피언을 안겼다. 무엇보다 엔진을 공급한 혼다에게는 1991년 아일톤 세나 이후 30년 만의 드라이버 타이틀이었다. 공교롭게도 2021년은 혼다가 F1에서 공식 철수를 예고한 마지막 시즌이었기에, 이 우승은 한 시대의 마침표이자 선물 같은 결말이기도 했다.
패자의 침묵도 그만큼 길었다. 해밀턴은 시상식에서 예의를 갖췄지만, 이후 몇 달간 공식 석상에서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그가 은퇴를 고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경기 며칠 뒤 그는 영국에서 기사 작위 서임식에 참석해 “서(Sir) 루이스 해밀턴”이 됐지만, 그 자리의 표정에서도 못다 이룬 여덟 번째 타이틀의 아쉬움이 읽혔다. 그는 결국 시즌을 이어갔지만, 2021년의 그 마지막 한 바퀴는 오래도록 그를 따라다녔다.
한국 팬에게 이 레이스가 남긴 것
한국에서 F1은 오랫동안 “먼 나라 이야기”였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전남 영암에서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렸지만 지금은 캘린더에서 사라졌고, 국내 지상파 중계도 드물어졌다. 그런 한국 팬들에게 이 한 경기는 묘한 전환점이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본능의 질주(Drive to Survive)”가 입소문을 타며, 규정도 잘 모르던 사람들이 베르스타펜과 해밀턴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겹쳤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매력은 결국 이야기다. 정교한 기술이나 0.1초의 랩타임보다 먼저 사람을 사로잡는 것은, 7년 왕좌를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가 마지막 한 바퀴에 모든 것을 거는 서사다. 2021 아부다비는 그 서사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완성된 무대였고, 그래서 F1을 잘 모르던 한국 시청자에게도 강렬하게 각인됐다. 좋든 싫든, 이 한 경기가 적지 않은 사람을 모터스포츠 팬으로 끌어들였다.
흥미로운 접점도 있다. 이 우승으로 30년 만에 챔피언 엔진이 된 혼다는, 한국 도로에서도 익숙한 브랜드다. 또한 베르스타펜을 챔피언으로 만든 타이어·전략 싸움은, 결국 “한 세트의 타이어를 언제 갈아 끼우느냐”라는 우리가 일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로 환원된다. 화려한 머신과 천문학적 예산 뒤에서, 승부를 가른 건 의외로 단순한 타이밍의 판단이었던 셈이다.
2021년의 이 결말을 어떻게 평가하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날 이후 F1은 “규정은 사람이 적용하는 순간 완성된다”는 사실을 가장 비싼 수업료로 배웠다. 그리고 그 수업은, 멀리 한국의 거실에서 처음 F1을 켠 누군가에게 “이 스포츠, 생각보다 잔인하고 매력적이구나”라는 첫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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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 2021 Abu Dhabi Grand Prix — Wikipedia
- Race report — Formula1.com
- FIA report: “Human error” — Sky Sports
- 2021 F1 월드챔피언 막스 베르스타펜 — Grahampurse,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아부다비 야스 마리나 서킷 — TravelPhotosNL,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메르세데스 루이스 해밀턴, 2021 실버스톤 — Jen Ross,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 레드불 RB16B 머신 — Hullian111,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막스 베르스타펜과 세르히오 페레스, 2021 실버스톤 — Jen Ross,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