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컬처·기술

도심을 가르는 전기 질주 — 포뮬러 E가 열어가는 모터스포츠의 다음 장

매연 냄새도, 굉음도 없다. 그런데 심장은 더 빠르게 뛴다. 포뮬러 E는 세계 주요 도시의 거리를 서킷으로 바꾸며, 전동화 시대 모터스포츠가 어디로 향하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줄 요약
1포뮬러 E는 2014년 출범 이후 세계 주요 도시를 무대로 전기 레이스카 경쟁을 펼치는 FIA 공인 월드 챔피언십으로 성장했다.
22022/23 시즌부터 도입된 3세대 레이스카(Gen3)는 최고 출력과 회생 제동 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레이스의 밀도를 높였다.
3한국타이어(한국앤컴퍼니 그룹)가 타이어 공급사로 참여하는 등 한국 기업도 포뮬러 E 생태계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이 글은 포뮬러 E라는 챔피언십이 어떻게 탄생했고, 무엇을 실험하며,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를 따라간다. 기술과 도시, 레이싱 스포츠와 기후 의제가 뒤엉킨 이 무대를 하나씩 해부하면서, 한국 독자에게 가장 가까운 접점도 함께 짚어볼 것이다. 전기차 시대가 이미 도로 위에 도착했다면,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그 도착을 가장 먼저 선언한 것은 포뮬러 E였다.

한눈에 보는 포뮬러 E
공식 명칭ABB FIA 포뮬러 E 월드 챔피언십
첫 시즌2014/15 시즌 (베이징 e프리 개막)
레이스카 세대2022/23 시즌부터 Gen3 도입
주요 경기 무대도심 가설 서킷 (모나코·서울·도쿄 등)
타이어 공급사한국타이어 (한국앤컴퍼니 그룹)
포뮬러 E
도심을 가르는 전기 질주 — 포뮬러 E가 열어가는 모터스포츠의 다음 장 · 사진 LazerianClaire, CC0, via Wikimedia Commons

소음 없는 서킷의 탄생 — 포뮬러 E는 어떻게 시작됐나

2011년,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전기 포뮬러카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챔피언십 구상을 공식화했다. 당시 전기차는 아직 일반 소비자에게 낯선 존재였고, 모터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전기차로 레이싱을 한다’는 발상은 반신반의의 시선을 받았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4년 9월, 베이징 올림픽 공원 인근 가설 서킷에서 첫 번째 e프리가 열리며 포뮬러 E 역사의 첫 페이지가 쓰였다.

초창기 포뮬러 E는 기술적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배터리 용량이 충분하지 않아 드라이버들은 레이스 도중 두 대의 차를 바꿔 타야 했다. 피트레인 한편에 예비 차량을 세워두는 이 독특한 방식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운영 측은 이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이 실전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실제로, 기술은 빠르게 진화했다.

차량 교체 방식은 2018/19 시즌(5시즌)부터 폐지됐다. 배터리 밀도가 충분히 높아져 단 한 대의 차로 전체 레이스 거리를 완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전환점은 단순한 규정 변화가 아니라, 포뮬러 E가 ‘실험실’에서 ‘성숙한 챔피언십’으로 넘어가는 상징적 분기점이었다. 팬들은 그제야 이 시리즈를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전기차로 레이싱을 한다’는 발상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반신반의의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포뮬러 E는 그 시선을 경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FIA 월드 챔피언십 지위 획득
포뮬러 E는 2020/21 시즌(7시즌)부터 FIA 월드 챔피언십 지위를 부여받았다. F1, WRC, WEC와 같은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포뮬러 E의 위상이 단순한 신생 시리즈를 넘어섰음을 공식화한 결정이었다.

도시가 서킷이 된다 — 도심 레이스의 의미와 도전

포뮬러 E
포뮬러 E · 사진 KAgamemnon,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포뮬러 E의 가장 강렬한 정체성은 ‘도심 가설 서킷’에 있다. 런던의 엑셀 센터 주변, 모나코의 항구 앞 해변 도로, 홍콩의 센트럴 해안가, 뉴욕의 브루클린 부두, 그리고 서울의 잠실 일대까지. 평일에는 수천 명이 오가는 도로 위에 가드레일이 세워지고, 주말이면 전기 레이스카가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나들며 질주한다. 이 광경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하나의 도시 축제다.

도심 서킷은 운영 측면에서 극도로 복잡한 과제를 안긴다. 도로 표면은 일반 경주 전용 트랙과 달리 노면이 불균일하고, 배수로 뚜껑이나 맨홀이 변수가 된다. 코너 간격이 좁고 추월 공간이 제한적이어서 드라이버들은 끊임없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며 기회를 엿봐야 한다. 스트리트 서킷 특성상 작은 충돌도 즉각적인 세이프티카 상황으로 이어지며, 레이스 전략은 종종 예측 불가 방향으로 튀어오른다.

그러나 바로 그 복잡성이 포뮬러 E 레이스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관중은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레이스카를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한다. 입장권만 있으면 콘크리트 방호벽 너머 몇 미터 앞에서 최고 수준의 모터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다. 전통 서킷처럼 광활한 부지가 필요 없으니 도시 입장에서도 접근성이 높다. 포뮬러 E는 이 구조를 통해 ‘레이싱 팬이 아닌 사람’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도심 레이스에는 또 하나의 상징성이 깔려 있다. 전기차가 가장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공간은 도시다. 충전 인프라, 대기질 규제, 친환경 이동 수단에 대한 수요가 가장 집약된 곳이 바로 도심이다. 포뮬러 E는 그 도심을 직접 무대로 삼음으로써,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전기 모빌리티의 가능성을 도시민들에게 직접 체험시키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Gen3의 등장 — 3세대 레이스카가 바꾼 것들

2022/23 시즌, 포뮬러 E는 세 번째 세대 레이스카인 ‘Gen3’를 도입하며 기술적 도약을 선언했다. Gen3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출력, 속도, 효율 모든 면에서 현격한 향상을 이뤄냈다. 차량 무게는 약 840킬로그램(드라이버 포함)으로, Gen2 대비 가볍게 설계됐으며, 최대 출력은 예선 모드 기준 350kW(약 470마력)에 달한다. 이는 도심 서킷에서도 진정한 ‘포뮬러카’ 수준의 퍼포먼스를 구현한다는 의미다.

Gen3의 가장 주목할 기술적 혁신은 회생 제동(regenerative braking) 시스템의 대폭 강화다. 차량 전면과 후면에 각각 독립적인 전기 모터가 장착되어, 브레이킹 구간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 배터리에 저장한다. 포뮬러 E 측에 따르면 Gen3는 레이스 중 사용하는 에너지의 40% 이상을 회생 제동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브레이크 페달이 곧 발전기가 되는 셈이다.

Gen3는 레이스카 설계 철학에도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지속 가능성이 설계 단계부터 고려됐으며, 차체 일부에는 재활용 소재가 적용됐다. 타이어 역시 지속 가능성 기준을 충족하는 소재로 제작됐다. 모터스포츠 역사상 ‘환경 영향을 최소화한 레이스카’를 공식 목표로 내걸고 개발된 사례는 드물다. Gen3의 등장은 포뮬러 E가 단지 전기차를 달리게 하는 것을 넘어, 모터스포츠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 기준을 높이려 한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Gen3와 함께 경쟁 구도도 더욱 치열해졌다. 전면 모터에서 발생하는 추가 동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드라이버마다 다르게 운용되며, 팀의 소프트웨어 역량이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레이스카가 단순한 기계를 넘어 ‘달리는 데이터 센터’가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공격 모드(Attack Mode)란?
포뮬러 E 특유의 전략 요소인 ‘공격 모드’는 서킷 특정 구간을 통과하면 일정 시간 동안 출력을 추가로 끌어올릴 수 있는 규정이다. 활성화 타이밍과 횟수를 두고 팀과 드라이버 간 치열한 전략 싸움이 벌어지며, 관중에게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표시된다.

완성차 브랜드들은 왜 포뮬러 E로 왔나

포뮬러 E
포뮬러 E · 사진 Steffen Prößdorf,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포뮬러 E의 또 다른 매력은 완성차 제조사들이 직접 파워트레인 경쟁을 벌이는 구조에 있다. F1이 극소수 엔진 제조사의 독점적 기술 경쟁이라면, 포뮬러 E는 더 많은 브랜드가 자체 전기 파워트레인을 개발해 실전에서 맞붙는 형식이다. 포르쉐, 재규어, DS 오토모빌, 닛산, 안드레티(Andretti) 등 다양한 제조사와 팀이 참전해왔으며, 각 브랜드는 레이스 결과를 통해 자사 전기 기술력을 세계에 입증하려 한다.

완성차 브랜드가 포뮬러 E에 투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도로 위 전기차에 적용되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 회생 제동 로직, 전력 변환 효율 알고리즘 등이 레이스 환경에서 극한 테스트를 거친다. 시판 전기차의 주행 가능 거리를 늘리고 충전 효율을 높이는 데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기술들이다. 포뮬러 E는 자동차 회사들에게 ‘살아있는 연구소’ 역할을 한다.

다만 포뮬러 E의 제조사 참여 역사는 부침도 있었다. 아우디와 BMW는 2021년 시즌을 끝으로 공식 참전을 중단했고,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시즌 9(2022/23)를 끝으로 공장 팀을 철수했다. 각 브랜드가 공시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전반적으로 자국 내 전기차 개발 자원 집중이라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포르쉐와 재규어는 여전히 적극적으로 챔피언십에 임하고 있으며, 새로운 제조사의 진입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된다.

이처럼 완성차 브랜드들의 참여와 이탈이 반복되는 것은 포뮬러 E가 아직 ‘완성된 생태계’라기보다 ‘진화 중인 플랫폼’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으로, 이 역동성이야말로 포뮬러 E가 정체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경쟁 구도가 달라질 때마다 팬들은 새로운 구도를 맞이하고, 기술 트렌드도 함께 갱신된다.

포뮬러 E의 서킷은 자동차 회사들에게 단순한 경주 무대가 아니다. 도로 위 전기차 기술을 극한 환경에서 검증하는 살아있는 연구소다.

포뮬러 E가 모터스포츠 관점에서 이룬 성과는 정말 대단하다. 이런 새로운 챔피언십을 시작하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다.

—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를 인용한 모터스포츠 커뮤니티 반응 중에서

팬 경험과 디지털 전략 — 포뮬러 E가 새로 쓴 관람 문화

포뮬러 E는 탄생 초기부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다. 전통 모터스포츠가 오랜 팬 베이스와 고령화된 시청자 구조를 고민하는 사이, 포뮬러 E는 소셜 미디어와 인터랙티브 팬 참여를 챔피언십 운영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팬 부스트(FanBoost)’다. 팬들이 소셜 미디어 투표를 통해 특정 드라이버에게 추가 에너지 부스트를 줄 수 있는 이 제도는 도입 초기 큰 화제를 모았다.

팬 부스트는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며 꾸준히 논란의 대상이 됐다. 순수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팬 인기 투표가 경쟁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스포츠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반면, 팬이 레이스 결과에 실제로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세대에게 강렬한 참여감을 주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이 논쟁 자체가 포뮬러 E가 기존 모터스포츠의 문법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뒤흔들었는지를 보여준다.

포뮬러 E는 방송 중계 방식에서도 혁신을 시도했다. 온보드 카메라 시점을 다양화하고, 실시간 에너지 잔량과 전략 데이터를 중계 화면에 시각화하는 방식이 일찌감치 도입됐다. ‘Attack Mode’ 활성화 시점을 화면에 그래픽으로 표시해 처음 보는 시청자도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접근은 이후 F1의 DRS 표시 방식 등 다른 챔피언십의 중계 개선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이스 현장 경험도 포뮬러 E 특유의 방식으로 설계된다. 도심 서킷 인근에 ‘E 빌리지(E-Village)’라 불리는 행사 구역이 함께 운영되며, 전기차 관련 전시, 체험 부스, 아티스트 공연 등이 함께 제공된다. 레이스를 보러 온 관객이 자연스럽게 전기 모빌리티 생태계를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단순한 레이스 관람을 넘어 하나의 문화 이벤트로 포지셔닝하려는 의도가 명확하다.

한국타이어와 포뮬러 E — 한국 기업이 만드는 레이싱 기술

ABB FIA 포뮬러 E 월드 챔피언십의 공식 타이어 공급사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앤컴퍼니 그룹)다. 2022/23 시즌, 즉 Gen3가 도입된 바로 그 시즌부터 한국타이어는 전 팀에 단일 타이어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 레이스카에 장착되는 타이어를 한국 기업이 독점 공급한다는 의미로, 기술력 측면에서 상징적 가치가 크다.

포뮬러 E용 타이어는 일반 레이스 타이어와 다른 독특한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 전기 레이스카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훨씬 큰 순간 토크를 발생시킨다. 출발 직후 타이어에 가해지는 충격이 극단적으로 강하고, 회생 제동 시에는 정반대 방향의 하중이 타이어에 집중된다. 도심 가설 서킷의 불균일한 노면을 타이어가 모두 흡수해야 하는 것도 설계 난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한국타이어는 이 모든 조건에 대응하는 전용 컴파운드와 구조를 개발해 실전에 투입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포뮬러 E 참여를 단순한 스폰서십이 아닌 기술 개발의 플랫폼으로 활용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레이스 환경에서 수집된 데이터와 피드백이 시판용 전기차 타이어 개발에 직접 반영된다는 논리다. 전기차 전용 타이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포뮬러 E라는 최전선 경쟁 무대에서 기술을 검증하는 것은 브랜드 포지셔닝과 실질적 기술력 향상 모두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이다.

한국타이어의 포뮬러 E 참여는 한국 독자에게 이 챔피언십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 기술이 경쟁하는 무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이 커지는 흐름 속에서, 레이싱 서킷 위 타이어 하나에도 그 맥락이 살아있다.

포뮬러 E 서킷을 달리는 모든 레이스카의 타이어 아래에는 한국 기술이 깔려 있다.

포뮬러 E는 정말 레이싱의 미래인가 — 한계와 가능성

포뮬러 E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질문은 여전히 이것이다. ‘포뮬러 E는 레이싱의 미래인가?’ 파이낸셜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이 이 질문을 던졌고, 모터스포츠 커뮤니티 안에서도 논쟁이 계속된다. 긍정적 관점에서 보면, 포뮬러 E는 새로운 챔피언십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낸 거의 유일한 사례다. 새로운 레이싱 시리즈를 만들어 지속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감안하면, 포뮬러 E가 10년 넘게 성장을 이어온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성취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레이스 자체의 흥미도 측면에서 포뮬러 E는 F1이나 WEC와 비교해 여전히 ‘박진감이 덜하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도심 서킷의 특성상 추월 기회가 제한되고, 속도의 절대값이 F1에 비해 낮다는 점은 오랜 모터스포츠 팬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청률과 현장 관중 규모도 F1이나 MotoGP와 비교해 아직 격차가 있다.

그럼에도 포뮬러 E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시리즈가 스스로를 ‘F1의 경쟁자’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포뮬러 E는 다른 목표를 향한다. 도시 친화성, 전기 기술 개발 촉진, 새로운 팬층 개척, 지속 가능한 모터스포츠 모델 실험. 이 모든 것이 포뮬러 E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건 가치들이다. 전통 모터스포츠가 100년 이상 쌓아온 레거시와 경쟁하는 대신, 전혀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무대를 개척하는 전략이다.

포뮬러 E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시간이다. 전기차 보급이 가속화되고, 내연기관 차량에 대한 규제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전기 레이스카 챔피언십의 사회적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오늘의 포뮬러 E 관중이 내일의 전기차 소비자가 되고, 오늘의 포뮬러 E 기술이 내일의 도로 위 전기차에 탑재된다. 이 연결고리가 이 챔피언십의 궁극적인 가치다.

포뮬러 E와 F1, 공존의 시대
포뮬러 E와 F1은 경쟁 관계라기보다 다른 영역을 개척하는 두 챔피언십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F1은 하이브리드 파워유닛 기술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을 추구하는 반면, 포뮬러 E는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의 경계를 넓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두 시리즈는 각자의 기술적 방향성과 팬 베이스를 지니며 공존하고 있다.

서울 e프리와 한국 — 우리가 포뮬러 E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한국은 포뮬러 E와 결코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서울 e프리는 2022년 8월 잠실 일대에서 처음 개최됐다. 한강 변을 끼고 도심 빌딩을 배경으로 펼쳐진 그 레이스는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포뮬러카 레이스를 직접 보기 위해 해외 서킷까지 원정을 가던 팬들이,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잠실에서 세계 정상급 전기 레이스카 경쟁을 목격했다.

서울 e프리는 단순한 레이스 개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이 전기차 산업에서 세계적 위상을 높이고 있는 시점에, 수도 서울이 포뮬러 E의 공식 경기 무대로 선정됐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현대차 그룹과 기아의 전기차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배터리가 글로벌 전기차 공급망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맥락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앞서 언급한 한국타이어의 공식 타이어 공급사 역할 역시 이 맥락 위에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 레이스카에 한국산 타이어가 장착되고, 그 레이스가 서울 도심에서 열린다. 한국 전기차 산업의 현재 위상이 포뮬러 E라는 무대 위에서 선명하게 표현되는 장면이다. 포뮬러 E를 지켜보는 것은 곧 한국 기술력이 세계 모터스포츠 생태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의 모터스포츠 팬 인구는 F1 중계권 재계약과 미디어 노출 증가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성장의 흐름 속에서, 포뮬러 E는 F1과는 다른 감성과 철학을 지닌 대안적 챔피언십으로 새롭게 발견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서울이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열리는 레이스,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기술 경쟁, 그리고 전기차 시대와 맞닿은 미래 지향적 이야기. 한국 독자에게 포뮬러 E는 먼 나라의 스포츠가 아니다.

한국 팬의 시선

포뮬러 E는 한국 독자에게 세 가지 접점을 통해 가장 가깝게 다가온다. 첫째, 잠실을 무대로 삼은 서울 e프리는 국내 팬들이 직접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 레이스를 체험한 무대였다. 둘째, 한국타이어(한국앤컴퍼니 그룹)가 Gen3 시즌부터 공식 타이어 공급사로 참여하며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레이스카 아래 깔려 있다. 셋째, 현대·기아의 전기차 브랜드 경쟁력과 한국 배터리 산업의 성장이 포뮬러 E가 상징하는 전동화 미래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포뮬러 E를 들여다보는 것은 곧 한국 전기 모빌리티 산업의 현주소를 모터스포츠의 렌즈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심의 아스팔트 위, 굉음 대신 고주파 전동음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 포뮬러 E는 여전히 진화 중이고, 여전히 논쟁 중이며, 여전히 앞으로 달리고 있다. 완성된 챔피언십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챔피언십. 그것이 오히려 이 시리즈를 흥미롭게 만드는 본질인지도 모른다. 전기차가 도로를 점령하는 시대가 올수록, 도심 서킷 위의 이 전기 레이스카들은 더욱 강렬한 의미를 품게 될 것이다. 우리가 포뮬러 E를 지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레이스가 단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이동하는 방식의 미래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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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이미지 크레딧
  • 포뮬러 E — LazerianClaire, CC0, via Wikimedia Commons
  • 포뮬러 E — KAgamemnon,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포뮬러 E — Tdorante10,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