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가장 아름다운 레이스카 — 기능이 빚어낸 예술

레이스카는 예쁘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다. 오직 빠르기 위해, 기능만을 좇아 설계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빠름을 추구한 머신들이 종종 가장 아름다웠다. 기능이 빚어낸 예술 — 시대를 초월한 명차들의 이야기.

3줄 요약
1레이스카의 아름다움은 장식이 아니라 순수한 기능의 결과다.
2로터스 49, 포르쉐 917, 페라리 프로토타입 등은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꼽힌다.
3‘가장 아름다운 머신’은 결국 그 시대의 기술 철학을 담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레이스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와 국경을 넘어 반복적으로 사랑받는 머신들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들이 아름다우려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직 빠르기 위한 설계가 결과적으로 예술이 됐다. 이 글은 그 역설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로 안내한다.

한눈에 보는 명작 레이스카
공통점기능(공력·경량)이 만든 아름다움
1960s F1로터스 49 — 단순하고 우아한 시가 형태
내구 전설포르쉐 917 — 압도적 존재감의 곡선
랠리 아이콘란치아 스트라토스 — 쐐기형 디자인
미학의 원천‘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가치박물관·경매에서 예술품 대접
아름다운 레이스카
가장 아름다운 레이스카 — 기능이 빚어낸 예술 · 사진 Deep silence (Mikaël Restoux),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아름다움은 기능의 부산물

레이스카 디자인의 대원칙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이다. 공기를 가르는 형상, 다운포스를 만드는 곡선, 무게를 줄이는 구조 — 모든 선이 성능을 위해 존재한다. 장식을 위한 선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순수함이 아름다움을 낳는다. 불필요한 것을 모두 덜어낸 형태, 물리 법칙에 최적화된 곡선은 그 자체로 정직하고 우아하다. 자연이 만든 형태 — 물고기나 새 — 가 아름다운 것과 같은 원리다.

그래서 레이스카의 아름다움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특정 시대의 취향이 아니라, 그 시대의 ‘최적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명작으로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60~70년대 F1 — 우아한 시가의 시대

아름다운 레이스카
아름다운 레이스카 · 사진 Renegade,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60년대 F1 머신은 가늘고 긴 ‘시가(cigar)’ 형태였다. 대표작인 로터스 49는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과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지금도 가장 우아한 F1 머신 중 하나로 꼽힌다. 엔진을 차체 구조의 일부로 쓴 혁신까지 담긴, 기능과 미의 조화였다.

이 시대의 머신들은 날개(윙)가 본격 도입되기 전이라, 순수한 유선형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복잡한 공력 부품 없이도 빠르면서 아름다웠던, F1 디자인의 낭만적 시기였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윙과 그라운드 이펙트가 등장하자 머신의 형태는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로터스를 비롯한 팀들은 혁신과 미감을 함께 추구했다. 아름다움과 성능이 서로를 밀어 올린 시대였다.

포르쉐 917 — 압도적 존재감의 곡선

내구 레이싱으로 눈을 돌리면, 포르쉐 917이 있다. 르망을 정복하기 위해 태어난 이 머신은 낮고 길게 뻗은 유려한 보디와 강렬한 컬러링으로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레이스카’ 목록에 빠지지 않는다.

917의 아름다움은 위압감에서 나온다. 극한의 속도를 위해 설계된 그 형태는 보는 이를 압도하며, 동시에 완벽한 비례로 눈을 사로잡는다. 영화와 광고에 끊임없이 등장하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이유다.

917을 비롯한 이 시대의 내구 프로토타입들은, 순수한 속도 추구가 어떻게 조각 같은 형태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기능의 극한이 곧 미의 극한이 된 대표적 사례다.

빠르기 위해 깎아낸 형태가, 결국 조각 같은 아름다움이 되었다.

레이스카는 아름다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답다.

— 레이스카 디자인의 역설

쐐기의 시대와 랠리의 아이콘

아름다운 레이스카
아름다운 레이스카 · 사진 Ermell,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1970년대에는 날카로운 ‘쐐기(wedge)’ 형태가 유행했다. 공기를 아래로 눌러 다운포스를 만드는 이 형상은 미래적이면서도 강렬했다. 랠리에서는 란치아 스트라토스가 이 쐐기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오직 랠리에서 이기기 위해 태어난 짧고 날렵한 이 머신은, 지금도 가장 개성 있는 디자인의 레이스카로 사랑받는다.

랠리카의 아름다움은 F1이나 내구 프로토타입과는 결이 다르다. 험로를 달리기 위한 근육질의 실루엣, 넓은 펜더와 공격적인 자세가 특유의 매력을 만든다. 거칠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아름다움이다.

이처럼 종목마다, 시대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달랐다. 그러나 공통점은 하나다 — 그 형태가 모두 ‘이기기 위한 절박함’에서 나왔다는 것. 진정성이 만든 아름다움인 셈이다.

예술이 된 기계

오늘날 이 명작 레이스카들은 박물관에 전시되고, 경매에서 예술품 못지않은 가격에 거래된다. 원래 목적(레이싱)을 다한 지 오래지만, 그 형태의 가치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진다. 기계가 예술이 된 것이다.

이는 레이스카 디자인의 특별함을 말해준다. 순수하게 기능만을 좇았는데, 그 결과가 시대를 초월하는 미적 가치를 지니게 된 것. 이런 ‘의도하지 않은 아름다움’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레이스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 겉치레가 아니라 ‘빠름에 대한 순수한 헌신’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레이스카를 볼 때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결국 그 정직한 아름다움에 대한 반응이다.

아름다운 레이스카
아름다운 레이스카 · 사진 Lothar Spurzem, CC BY-SA 2.0 de, via Wikimedia Commons
아름다운 레이스카
아름다운 레이스카 · 사진 Antoine uploaded by Micap,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한국 팬의 시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원칙은 산업 디자인 전반의 화두이며, 한국 제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과정에서도 핵심 가치였다. 자동차·가전·모바일에서 한국 디자인이 인정받게 된 것도 ‘기능과 미의 조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레이스카의 아름다움은, 진정한 디자인이 겉치레가 아니라 본질에서 나온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커스텀·튜닝 문화가 성장하며 ‘기능적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레이스카들은 하나같이 ‘이기기 위해’ 태어났다. 예뻐지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순수하게 빠름을 좇은 그 형태들이 결국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이 됐다. 로터스 49의 우아함도, 포르쉐 917의 위압감도, 란치아 스트라토스의 날카로움도 모두 그렇다. 진짜 아름다움은 꾸밈이 아니라 본질에서 나온다는 것 — 레이스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미학이다.

● ● ●

함께 읽기

● ● ●

참고·출처

이미지 크레딧
  • 아름다운 레이스카 — Deep silence (Mikaël Restoux),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아름다운 레이스카 — Renegade,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아름다운 레이스카 — Ermell,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아름다운 레이스카 — Lothar Spurzem, CC BY-SA 2.0 de, via Wikimedia Commons
  • 아름다운 레이스카 — Antoine uploaded by Micap,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