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GT 레이스

포르쉐 919가 WEC를 지배한 방법: 하이브리드 괴물의 전설

**2014년, 포르쉐는 16년의 침묵을 깨고 르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단 1년의 준비 끝에 세계를 뒤흔든 하이브리드 괴물, 포르쉐 919를 전장에 내세웠다.** 이 차가 만들어낸 숫자들—세 번의 르망 종합 우승, WEC 챔피언십 연속 제패, 그리고 은퇴 후에도 경신해낸 서킷 레코드—은 단순한 레이싱 역사가 아니라 인간 기술력의 정점을 증명하는 서사다.

3줄 요약
1포르쉐 919 하이브리드는 2014년 WEC 복귀작으로, 2015·2016·2017년 르망 24시를 3연패하며 LMP1 시대를 지배했다.
2V4 가솔린 엔진 약 500마력과 전기모터 약 400마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으로, 당시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회수 기술을 탑재했다.
32018년 WEC 철수 후 규정 제한을 모두 해제한 919 Evo로 스파 등 여러 서킷에서 절대 랩타임 기록을 경신하며 전설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글은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기술적 혁신을 품었으며, 수년 동안 WEC와 르망 24시를 어떻게 지배했는지를 차례로 따라간다. 단순한 레이싱카 소개를 넘어, 한 시대를 정의한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본질과 그것이 모터스포츠 역사에 남긴 흔적을 함께 살펴볼 것이다. 포르쉐가 왜 이 차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이 차가 지금도 회자되는지—그 답이 여기에 있다.

한눈에 보는 포르쉐 919
데뷔 연도2014년 (WEC 복귀)
르망 24시 우승2015·2016·2017년 3연패
가솔린 엔진 출력약 500마력 (V4 터보)
전기모터 출력약 400마력 (ERS 합산)
919 Evo 기록 도전2018년 스파 프랑코샹 서킷 랩타임 기록 경신
포르쉐 919
포르쉐 919가 WEC를 지배한 방법: 하이브리드 괴물의 전설 · 사진 Kevin Decherf from Nantes, France,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16년의 침묵, 그리고 귀환의 선언

포르쉐가 르망 24시 최고 클래스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는 1998년이었다. 그 이후 브랜드는 GT 클래스와 포르쉐 슈퍼컵 등 다른 무대에 집중했고, LMP1이라는 최상위 프로토타입 카테고리는 아우디와 토요타 등 다른 제조사들이 채워나갔다. 그러나 포르쉐 내부에서는 언제나 르망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그 꿈이 공식 프로젝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1년이었고, 수년간의 연구와 개발 끝에 2014년 919 하이브리드가 세상에 공개됐다.

복귀 선언 자체가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당시 LMP1 클래스는 단순한 내구 레이싱을 넘어,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래 기술을 겨루는 ‘이동하는 연구소’로 변해가고 있었다. ACO(자동차클럽 드 로에스트)는 에너지 회수 시스템(ERS)을 적극 장려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개편했고, 포르쉐는 이 흐름을 정확히 읽었다. 내연기관의 강점과 전기 구동의 효율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기술이야말로 포르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었고, 회사는 그 확신을 레이스카로 구현하기로 했다.

919라는 차명에는 상징이 담겨 있다. 포르쉐의 역사에서 ‘9’로 시작하는 레이스카는 언제나 전설이었다. 906, 908, 917, 956, 962—이 계보의 연장선에서 919는 새로운 시대를 열 차로 명명됐다. 팀을 이끈 엔지니어들은 단순히 경쟁력 있는 레이스카가 아니라, 포르쉐의 혼이 담긴 머신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개발에 임했다. 그 결과물은 2014년 르망의 그리드에 등장했고, 첫 해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LMP1 하이브리드 규정이란?
ACO와 FIA가 2012년부터 도입한 LMP1-H 규정은 에너지 회수 시스템의 사용을 허용하고, 연료 에너지 투입량 상한을 기준으로 출력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각 제조사는 내연기관과 전기 구동의 조합 방식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었으며, 포르쉐·아우디·토요타가 각기 다른 철학으로 이 규정에 도전했다.

900마력의 철학: 919의 파워트레인 해부

포르쉐 919
포르쉐 919 · 사진 Mike Roberts from London, United Kingdom,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의 심장은 단 하나가 아니다. 차체 전면에는 2.0리터 V4 직분사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이 자리하며, 이 엔진만으로도 약 500마력의 출력을 낸다. 그러나 진짜 혁신은 전기 구동계에 있었다. 두 가지 에너지 회수 시스템—제동 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시스템과 배기 터빈을 통해 열에너지를 회수하는 시스템—이 합산 약 400마력의 전기 출력을 더했다. 합계로는 900마력에 육박하는 숫자가 나온다.

특히 배기 에너지 회수 시스템은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독특한 접근이었다. 일반적인 레이스카 하이브리드는 제동 에너지 회수에 집중하지만, 919는 터빈을 통해 배기가스의 열에너지까지 전기로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내연기관에서 버려지는 에너지를 추가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효율성의 극한을 추구한 선택이었다. 르망처럼 긴 직선 구간이 있는 서킷에서 이 시스템은 특히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무게 배분과 공기역학 또한 919의 강점이었다. 엔진은 앞에, 에너지 저장 시스템과 전기 구동계는 뒤쪽에 배치해 전후 중량 배분을 최적화했다. 앞 액슬에는 전기모터가 추가로 연결되어 사실상 네 바퀴 모두가 구동력을 받는 구성이 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복잡한 파워트레인을 신뢰성 있게 24시간 이상 작동시키는 것이 엔지니어링 팀의 가장 큰 과제였으며, 그 과제를 해결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

제동할 때마다, 배기가스가 빠져나갈 때마다 에너지를 거두어들인다—919는 낭비를 허용하지 않는 기계였다.

2015~2017: 르망을 세 번 정복한 이야기

2014년 첫 시즌, 919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신뢰성 문제로 경기를 마치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고, 정상까지 닿기엔 한 발이 부족했다. 하지만 포르쉐 팀은 데이터를 쌓고 약점을 파악했다. 그리고 2015년, 마침내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닉 탠디, 닉 하이드펠드, 패트릭 필리포트 등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들과 함께 919는 르망의 결승선을 맨 처음 통과했다. 포르쉐의 르망 통산 우승 횟수는 17번째로 늘어났고, 16년의 기다림은 환호성으로 터져 나왔다.

2016년 대회는 더욱 극적이었다. 르망 24시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날씨, 안전차 개입, 기계적 트러블—무엇이든 레이스를 뒤집어놓을 수 있다. 그 해에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지만 919는 다시 한번 최상의 신뢰성과 속도를 결합해 1-2위를 달성했다. 브렌던 하틀리, 마르크 리브, 티모 베른하르트로 구성된 7번 차팀이 우승을 차지하며 포르쉐의 연속 제패를 이어갔다.

2017년은 919 하이브리드가 현행 규정 차량으로 뛰는 마지막 르망이었다. 포르쉐는 이 해 WEC 복귀 이후 최강의 완성도를 선보였다. 티모 베른하르트, 브렌던 하틀리, 얼 밤버 트리오가 다시 한번 정상에 올랐고, 3연패라는 숫자가 역사에 새겨졌다. 같은 해 WEC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제조사 챔피언십도 포르쉐 차지였다. 이 시기의 919는 단순히 빠른 차가 아니라, 레이스를 지배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차였다.

르망 24시 3연패의 의미
르망 24시에서 3연패 이상을 기록한 자동차 제조사는 역사상 소수에 불과하다. 포르쉐는 1981~1987년에도 연속 우승을 달성한 바 있으며, 919를 앞세운 2015~2017년 3연패는 현대 하이브리드 기술 시대의 제패로 별도의 의미를 갖는다.

규정의 틀을 넘어서: 919 Evo의 탄생

포르쉐 919
포르쉐 919 · 사진 David Merrett,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2018년, 포르쉐는 WEC LMP1 클래스에서의 철수를 공식 선언했다. 비용 구조의 압박과 새로운 Formula E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포르쉐 엔지니어들에게는 919에 쏟아부은 열정과 기술을 그냥 박물관에 넣어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919 하이브리드 Evo’다. Evo는 WEC 레이스 규정의 모든 제한을 해제하고, 기술적으로 가능한 최대치를 구현한 버전이다.

규정 제한이 풀리자 가장 먼저 변한 것은 공기역학이었다. 전면 다운포스를 극대화하는 거대한 프론트 윙, 능동적으로 각도가 바뀌는 리어 스포일러, 차체 전반에 걸친 에어로 디바이스 추가—결과적으로 919 Evo가 생성하는 다운포스는 원래 레이스 버전 대비 상당히 증가했다. 출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체 시스템 출력은 1,000마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Evo의 첫 공개 도전은 벨기에의 스파 프랑코샹 서킷에서였다. 포르쉐 공장 드라이버 니코 휠켄베르크가 핸들을 잡고 질주한 919 Evo는 스파에서의 랩타임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레드불 링 등 여러 서킷에서도 Evo는 현행 다른 카테고리의 최고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순회 공연을 펼쳤다. 포르쉐 917이 1960~70년대를 지배했던 것처럼, 919 Evo는 그 정신적 후계자로서 시대의 대미를 장식한 것이다.

규정이 없다면 919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그 물음에 Evo가 직접 답했다.

엔지니어들은 최고 수준의 차량 설계로 시대의 대미를 장식했다.

— 포르쉐 크리스토포러스 매거진, 919 하이브리드 Evo 특집 (2018)

917과 919: 두 전설이 공유하는 DNA

포르쉐의 레이싱 역사에서 917과 919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두 기둥이다. 1969년 등장한 917은 당시의 규정 허점을 최대한 활용한, 순수하게 빠르고 위험한 머신이었다. 1970년과 1971년 르망 24시를 제패하며 포르쉐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이 차는 당시 ‘너무 빠르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극단적인 성격이었다. 반면 919는 그로부터 40년 이상의 기술 발전을 집약한 결정체로, 속도의 추구가 아니라 효율의 극대화를 통해 정상에 올랐다.

두 차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은 ‘제한에 도전하는 정신’이다. 917의 엔지니어들이 공기역학과 엔진 출력의 한계를 밀어붙였다면, 919의 엔지니어들은 에너지 회수와 하이브리드 통합 제어의 한계를 개척했다. 레이스카를 만드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더 빠르게, 더 오래, 더 효율적으로’를 추구하는 포르쉐의 모터스포츠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포르쉐 크리스토포러스 매거진은 두 차가 ‘각기 그 시대의 레이싱을 지배했다’고 표현했으며, 이는 단순한 마케팅 수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

919 Evo가 스파에서 917의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주행을 펼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포르쉐는 의도적으로 두 차를 같은 시대의 무대에 올려, 자신들의 레이싱 역사가 하나의 끊기지 않는 서사임을 세상에 보여줬다. 박물관 속 유산과 현재의 기술이 동일한 철학 아래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그것이 포르쉐가 917과 919를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다.

드라이버들의 증언: 919를 몰다는 것

포르쉐 919
포르쉐 919 · 사진 Felix König,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레이스카는 데이터와 도면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919를 실제로 몰았던 드라이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비로소 이 차가 어떤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다. 브렌던 하틀리는 919를 몰던 경험을 두고 ‘이렇게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레이스카는 처음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상태, 배터리 잔량, 에너지 회수 모드 전환—드라이버는 단순히 핸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시스템의 마지막 의사결정자 역할을 해야 했다.

919는 드라이버에게 굉장한 물리적 부담도 요구했다. 르망의 경우 드라이버 한 명이 최대 4~5시간씩 연속 주행을 해야 하는 구간이 생길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900마력에 달하는 파워를 제어하고, 고속 코너에서 발생하는 강한 측면 가속도를 버티며, 동시에 에너지 관리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팀 내부에서는 19번 차와 17번 차 사이에 지속적인 무전 교신이 이루어졌으며, 이 교신 내용이 가끔 공개될 때마다 919 조종이 얼마나 정밀한 팀워크를 요하는지가 드러났다.

니코 휠켄베르크는 919 Evo를 타고 서킷 기록에 도전했을 때의 감각을 ‘포뮬러카와 닮았지만 완전히 다른 무언가’라고 묘사했다. 극도의 다운포스와 900마력을 넘는 출력이 결합된 차를 공공 서킷에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경험은, 현역 F1 드라이버도 새로운 차원의 자극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919 Evo가 만들어낸 기록들은 수치에 그치지 않고, 그 수치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919의 주요 드라이버 라인업
919의 전성기 드라이버로는 티모 베른하르트, 브렌던 하틀리, 얼 밤버, 마르크 리브, 니코 휠켄베르크, 로맹 뒤마 등이 있었다. 이들은 포르쉐 공장 드라이버와 외부 영입 드라이버의 조합으로, 각기 다른 강점을 919에 불어넣었다.

기술이 남긴 유산: 919가 모터스포츠에 준 것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가 WEC를 지배한 시기는 단순히 한 브랜드의 전성기가 아니라, 내구 레이싱 전체가 새로운 기술적 정체성을 확립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우디, 토요타와 함께 LMP1 하이브리드 삼파전이 펼쳐진 이 시절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레이스트랙을 연구개발의 가속장치로 활용한 모범 사례로 남아 있다. 에너지 회수, 배터리 관리,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통합 제어—919에서 검증된 이 기술들은 이후 포르쉐의 양산차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919의 기술적 유산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것은 열에너지 회수 시스템이다. 배기가스에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이 접근은 효율에 집착하는 현대 자동차 산업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했다. 물론 레이스카와 양산차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지만, ‘가능성의 증명’이라는 측면에서 919는 미래 기술의 시험대 역할을 충실히 했다. 모터스포츠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기술 발전의 플랫폼이라는 명제를 919는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한 레이스카 중 하나다.

2018년 WEC 철수 이후 포르쉐는 Formula E로 중심을 옮겼고, 이후 LMDh 규정에 맞춘 963으로 다시 최상위 내구 레이싱에 복귀했다.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919가 단절이 아닌 연속의 고리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919가 쌓은 하이브리드 노하우, 919가 증명한 에너지 회수의 효과, 919가 만들어낸 조직 문화—이 모든 것이 포르쉐의 다음 챕터를 써내려가는 밑바탕이 됐다.

919가 서킷에서 배운 것들은 멈추지 않았다—그 기술은 다음 포르쉐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한국 렌즈: 919와 우리가 공유하는 접점

한국 독자에게 포르쉐 919는 어떤 의미일까. 가장 직접적인 접점은 브렌던 하틀리다. 그는 뉴질랜드 출신이지만 2018년 F1 토로로소(현 비사캐브) 팀에서 뛰며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됐고, 그 F1 기회를 잡은 배경 중 하나가 919에서의 활약이었다는 점에서 두 세계가 연결된다. WEC에서의 성과가 F1 시트로 이어지는 경로가 실존한다는 것을 하틀리의 사례가 보여줬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919의 서사는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모터스포츠 투자를 확대하며 WRC(세계 랠리 선수권)에서 현대 i20 N 랠리카로 제조사 챔피언십을 획득하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기아 역시 GT 레이싱 프로그램을 키워가는 중이다. 언젠가 한국 브랜드가 LMDh나 그 계승 규정에서 포르쉐, 도요타, 페라리와 같은 무대에 선다면, 919의 시대가 쌓은 기술적 표준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국내 모터스포츠 팬 커뮤니티에서 919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차다. 해마다 열리는 르망 24시 중계를 챙겨보는 열성 팬들에게 2015~2017년의 포르쉐 황금기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새벽 시간대에도 PC 앞에 앉아 르망의 야간 세션을 지켜보던 이들이 적지 않았고, 919가 결승선을 통과하던 순간의 감동은 국내 모터스포츠 팬덤의 집단 기억 중 하나로 자리한다. 기술의 전설은 서킷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던 관중의 가슴 속에도 살아 있다.

한국 팬의 시선

한국의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포르쉐 919가 지배하던 2015~2017년 르망은 새벽 화면 앞에서 함께 숨죽이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브렌던 하틀리의 F1 데뷔가 919에서의 활약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현대자동차그룹이 WRC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며 최상위 내구 레이싱 도전을 꿈꿀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다는 사실은, 919의 유산이 한국 팬들에게도 단순한 관람 이상의 의미를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술이 만든 전설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는 세 번의 르망 우승을 땄고, 규정을 해제한 Evo 버전으로 서킷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그 과정에서 내구 레이싱이 기술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레이스카는 언젠가 박물관으로 간다. 하지만 919가 개척한 에너지 회수의 가능성, 하이브리드 통합 제어의 정교함, 그리고 ‘낭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엔지니어링 철학은 이미 다음 세대의 차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전설은 끝나지 않는다—다만 형태를 바꿔 계속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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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이미지 크레딧
  • 포르쉐 919 — Kevin Decherf from Nantes, France,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포르쉐 919 — Mike Roberts from London, United Kingdom,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포르쉐 919 — David Merrett,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 포르쉐 919 — Renegade,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