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카 도난, 전설이 밤 사이에 사라지다
어느 날 아침, 차고 문을 열었을 때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수십 년의 역사를 품은 레이스카가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것은 단순한 금전적 손실이 아니라, 모터스포츠라는 문화 유산 자체가 도둑맞는 순간이다.
모터스포츠는 속도와 기술의 예술이다. 그 예술의 결정체인 레이스카들은 때로 박물관에, 때로 개인 컬렉션에, 그리고 때로는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이 글은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명차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도난이라는 범죄 행위가 어떻게 모터스포츠의 역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빈자리가 얼마나 깊은 상처로 남는지를 들여다본다.

차고가 텅 빈 아침 — 모나코 코닉세그 원:1 도난 사건
2026년 1월, 유럽 모터스포츠 커뮤니티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전직 F1 드라이버 아드리안 수틸이 소유하던 코닉세그 원:1이 모나코의 개인 차고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코닉세그 원:1은 스웨덴의 하이퍼카 브랜드 코닉세그가 제작한 극도로 희귀한 모델로, 전 세계에 단 7대밖에 존재하지 않는 차량이다. 이름 자체가 ‘마력 대 중량비 1:1’, 즉 차체 1킬로그램당 1마력을 구현한다는 엔지니어링 철학을 담고 있다.
아드리안 수틸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포스 인디아(현 애스턴 마틴 F1) 등의 팀에서 활약한 독일 출신 F1 드라이버다. 서킷을 떠난 뒤에도 자동차에 대한 깊은 애정을 유지해 온 그가 이 희귀한 하이퍼카를 소장하고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모나코는 세계적인 부호들이 고가의 슈퍼카를 집결시키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바로 그 집중성이 도난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번 드러났다.
도난 사실이 알려진 직후, 코닉세그 공식 계정과 모터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에는 충격과 안타까움이 쏟아졌다. 단순히 비싼 자동차 한 대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전 세계 7대 중 1대, 즉 인류가 가진 이 모델의 14%가 하룻밤 사이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차량이 회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현 시점까지 공개된 정보가 제한적이며, 수틸과 관계 당국 모두 수사 진행 중임을 이유로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 세계 7대 중 1대’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희소한 인류 유산의 일부가 지워지는 일이다.
레이스카 도난의 역사 — 속도보다 빠른 범죄

레이스카 도난은 21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현상이 아니다. 모터스포츠의 역사가 길어지고, 과거의 레이스카들이 희소 자산으로 재평가받으면서 이들을 노리는 범죄도 함께 진화해 왔다. 1960~70년대 클래식 레이스카들은 오랫동안 ‘박물관이나 소수 수집가들의 물건’으로 여겨졌지만, 경매 시장이 활성화되고 클래식 레이스카의 시세가 치솟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레이스카 특유의 추적 어려움이다. 일반 승용차에는 차량식별번호(VIN)가 표준화되어 있고 여러 국가에 데이터베이스가 공유되지만, 옛 레이스카들은 관리 체계가 일관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부 차량은 번호판이 아예 없거나, 경주 목적으로 개조되어 원래 차대 번호가 바뀌어 있기도 하다. 도난된 레이스카는 분해·개조를 거쳐 부품 단위로 유통되거나, 페이퍼 히스토리(허위 서류)가 붙은 채 다른 이름으로 팔려 나가기도 한다.
모터스포츠 전문 보험사와 경찰 당국에 따르면, 고가 레이스카나 클래식카의 도난 상당수는 전문 조직에 의해 이루어지며, 도난 후 수 시간 내에 국경을 넘는 루트가 미리 계획된 경우가 많다. 모나코처럼 소규모 도시국가이면서 여러 나라와 맞닿아 있는 지역은 이러한 ‘국경 이동 절도’에 특히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차량이 일단 국경을 넘으면 수사 관할이 복잡해지고 회수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진다.
르망의 전설, 행방을 알 수 없는 클래식 레이스카들
레이스카 도난 사건 중에서도 유독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은 르망 24시간, F1 월드 챔피언십, 또는 기타 역사적 레이스에서 실제 완주하거나 입상한 기록을 지닌 차량들이 사라지는 경우다. 이 차량들은 단순한 기계를 넘어 모터스포츠 역사의 물리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엔진 소음, 타이어 자국, 심지어 차체에 남겨진 긁힘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 여러 경주 우승 차량이나 명차들이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소유주를 거치면서 출처가 불분명해지거나 사라진 사례가 있다. 일부는 헛간이나 창고에서 수십 년 만에 극적으로 재발견되어 ‘헛간 파인드(Barn Find)’라는 이름의 낭만적인 사연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도난된 경우는 다르다. 의도적으로 숨겨지고, 흔적이 지워지며, 역사의 기록에서 강제로 삭제된다.
클래식 레이스카 전문 보험사와 경매 하우스들은 도난 차량 정보를 공유하는 국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크리스티스, 본햄스, RM 소더비 같은 주요 경매 하우스들은 출품 차량에 대해 도난 이력 조회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아트 로스 레지스터(Art Loss Register)와 유사한 방식으로 레이스카 전문 조회 시스템도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도난되어 수차례 소유권이 변경된 차량은 그 흔적을 되짚기가 매우 어렵다.
도난 레이스카는 어디로 가는가 — 암시장과 분해의 경로

도난된 고가 레이스카의 행방을 추적하다 보면 크게 세 가지 경로로 귀결된다. 첫째는 부품 단위 해체 후 개별 유통이다. 레이스카의 희귀 부품, 특히 빈티지 엔진, 기어박스, 서스펜션 컴포넌트는 복원 시장에서 별도로 거래될 수 있으며, 차량 전체보다 분해했을 때 더 추적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조직적 도난 그룹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서류 세탁’을 통한 재판매다. 위조된 소유권 이전 서류, 허위 경매 기록, 혹은 다른 동일 모델의 폐차 서류를 유용해 도난 차량에 합법적 신원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는 법적 지식을 갖춘 공범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순 절도범의 소행이 아니라 조직적 범죄의 영역에 속한다. 피해자가 차량의 고유 부분(예: 시그니처 수리 흔적, 개조 이력)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 때만 비교적 감별이 가능하다.
셋째는 개인 수집가에게의 직접 판매다. 도난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도난인 줄 모르고 구매한 ‘선의의 구매자’ 문제도 복잡한 법적 분쟁을 낳는다. 특히 국가 간 거래가 이루어졌을 때, 어느 나라의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원 소유주의 반환 청구권이 인정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 법적 불확실성이 오히려 도난 레이스카를 구매하려는 이들에게 ‘회색 지대’를 제공한다는 비판도 있다.
도난 레이스카는 분해되거나 서류가 세탁되어 다시 시장에 나온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조각조각 지워진다.
차는 사라졌지만, 그 차가 달렸던 순간들은 아무도 훔쳐갈 수 없다.
— 레이스카 도난 사건을 접한 모터스포츠 커뮤니티의 공통된 정서
보안의 역설 — 가장 빠른 차가 가장 지키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이스카는 그 존재 특성상 일반 고가 승용차보다 도난에 더 취약한 측면이 있다. 우선 레이스카는 대부분 스티어링 잠금 장치, 이모빌라이저 같은 현대적 도난 방지 시스템이 없거나 제거된 상태다. 이는 레이스 환경에서 신속한 엔진 스타트와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바로 이 점이 도난을 더 쉽게 만든다.
또한 레이스카는 공도를 주행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번호판이 없고, 도로 교통법상 차량 등록 시스템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 차량은 CCTV에 찍힌 번호판을 통해 이동 경로 추적이 가능하지만, 번호판 없는 레이스카는 차량 자체의 외형으로만 식별해야 한다. 희귀 하이퍼카의 경우에는 차량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도 부족해 자동 인식 시스템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이에 대응해 최근 고가 레이스카와 클래식카 소유주들 사이에서는 차량 내부 여러 곳에 GPS 추적 장치를 숨기거나, 차체 패널에 DNA 마킹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극소형 RFID 태그를 구조물 깊숙이 심는 방법 등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역시 도난 조직이 체계적으로 탐지·제거하는 방법을 개발하면서 끝없는 기술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되찾은 자와 못 찾은 자 — 회수 사례와 영원한 공백

모든 도난 레이스카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터폴, 각국 경찰의 클래식카 전담반, 그리고 모터스포츠 커뮤니티 내의 자발적인 정보 공유 덕분에 때로는 극적인 회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수십 년 만에 다른 대륙에서 발견된 클래식 레이스카 사례는 관련 업계에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한 수집가가 자신이 구매한 차량의 부품 번호를 우연히 조회했다가 도난 목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회수 과정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발견된 차량이 이미 심하게 개조되거나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태일 수 있다. 더 복잡한 것은 법적 소유권 분쟁이다. 원 소유주, 도난 사실을 모르고 구매한 이후 소유주, 보험사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법정에서 수년간 싸움이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 과정에서 차량은 ‘증거물’로 묶여 아무도 사용하거나 복원하지 못한 채 방치되기도 한다.
아직도 회수되지 못한 채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레이스카들의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모터스포츠 역사 연구자들과 차량 추적 전문가들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수백 대의 의미 있는 레이스카들이 행방불명 상태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차량들 일부는 지구 어딘가의 비밀 창고에 잠들어 있을 것이고, 일부는 이미 분해되어 부품으로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 각각의 차량이 담고 있던 역사는 함께 사라졌다.
한국의 시각 — 모터스포츠 유산 보호,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한국 모터스포츠는 역사가 짧지만, 그 짧은 역사 안에서도 지켜져야 할 차량들이 존재한다. 국내 투어링카 챔피언십과 슈퍼레이스에서 활약했던 차량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한국 모터스포츠 발전을 이끈 머신들이 현재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조차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현실이다. 유럽처럼 전문 레이스카 등록·추적 시스템이 없다 보니, 어떤 차량이 현존하는지조차 명확히 파악되어 있지 않다.
자동차 문화 측면에서 한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가 슈퍼카와 하이퍼카 오너십이 늘어나면서, 모나코 코닉세그 사건처럼 극도로 희귀한 차량을 국내에 들여오는 경우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차량들에 대한 물리적 보안과 함께, 소유권 이력 관리, 도난 시 신속한 국제 공조 시스템 연계 등에 대한 인식도 함께 높아져야 할 시점이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를 비롯한 국내 모터스포츠 관련 기관들이 차량 이력 등록 및 보존에 더 체계적인 관심을 기울인다면, 미래에 ‘한국 모터스포츠의 역사가 사라졌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유럽과 북미의 사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기억과 금속 사이 — 레이스카가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이유

레이스카 도난이 이토록 크게 다뤄지는 이유는 그 차량들이 단순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기술, 한 드라이버의 땀, 한 팀의 열정이 물리적 형태로 응축된 유산이다. 코닉세그 원:1을 타고 서킷을 달렸던 아드리안 수틸의 기억, 그 차량이 만들어낸 기록,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모터스포츠에 대한 사랑 — 이 모든 것이 도난이라는 범죄 행위 앞에 무력해지는 순간은 단순한 재산 피해를 넘어선다.
모터스포츠 역사가들은 종종 ‘자동차 고고학자’라는 표현을 쓴다. 흩어진 파편으로부터 역사를 재구성하고, 사라진 차량의 흔적을 쫓아가는 작업이 마치 고고학자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도난된 레이스카를 추적하는 이들 역시 같은 감각으로 움직인다. 서류 한 장, 사진 한 장, 정비 기록 한 줄이 사라진 전설을 되살리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전 세계 7대밖에 없는 코닉세그 원:1 한 대가 모나코의 차고에서 사라진 그 밤, 세상은 모터스포츠 역사의 작은 조각을 잃었다. 그 차가 어디에 있든, 누구의 손에 있든,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하는 물리적 매개체가 없다는 것은, 모터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채워지지 않는 공백으로 남는다.
레이스카는 금속이 아니다. 그것은 달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굳어진 유산이다.
한국 팬의 시선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코닉세그 원:1 도난 사건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슈퍼카 문화와 모터스포츠 인프라가 빠르게 성장하는 지금, 이 사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에도 희귀 하이퍼카 오너가 늘어나고 있고,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를 담은 차량들의 보존 문제가 점점 더 현실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과 북미가 수십 년의 시행착오 끝에 구축한 도난 차량 추적 시스템과 보존 문화는, 한국이 이제부터라도 참고하고 제도적으로 논의해야 할 선례다. 모터스포츠 유산을 지키는 일은 차량 한 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가 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지키는 일이다.
전설은 서킷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그것이 지속되는 공간은 기억과 물리적 유산이 만나는 지점이다. 모나코의 그 차고에서 사라진 코닉세그 원:1이 언젠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그래서 아드리안 수틸이 다시 그 핸들을 잡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채 어딘가에 숨겨진 또 다른 전설들도, 언젠가는 햇빛 아래로 돌아오기를. 레이스카는 달릴 때 가장 아름답고, 기억될 때 가장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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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 레이스카 도난 — KWSW,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레이스카 도난 — Odo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레이스카 도난 — Pedro Ribeiro Simões from Lisboa, Portugal,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 레이스카 도난 — User:Jaydec,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레이스카 도난 — Sicnag,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