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오프로드

콜린 맥레이 — ‘If in doubt, flat out’을 온몸으로 살았던 랠리의 영원한 아이콘

의심이 들 때는 그냥 밟아라(If in doubt, flat out). 이 한 문장이 한 인간의 철학을 요약한다면, 그 인간은 콜린 맥레이다. 랠리 역사에서 그만큼 순수하게 공격적이고, 그만큼 아름답게 위험했던 드라이버는 다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3줄 요약
1콜린 맥레이는 1995년 스바루 임프레자를 몰고 WRC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당시 최연소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다.
2‘If in doubt, flat out’이라는 명언처럼 그의 운전 스타일은 위험과 환희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물었고,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켰다.
3그의 이름을 딴 ‘Colin McRae Rally’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수백만 장이 판매된 랠리 게임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한국에서도 1990~2000년대 PC방 문화와 함께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 글은 콜린 맥레이라는 한 인간이 랠리 스테이지 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다시 썼는지를 추적한다. 그의 아버지 지미 맥레이로부터 이어진 레이싱 혈통, 스바루 임프레자와 함께 만들어낸 챔피언십의 순간들, ‘If in doubt, flat out’이라는 영원한 모토, 그리고 비극적인 마지막까지. 아울러 그의 이름을 걸고 탄생한 게임 시리즈가 한국 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랠리라는 장르를 소개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콜린 맥레이는 단순한 챔피언이 아니었다. 그는 랠리가 무엇인지를 새로 정의한 사람이었다.

한눈에 보는 콜린 맥레이
생몰연도1968년 8월 5일 ~ 2007년 9월 15일
국적스코틀랜드(영국)
WRC 드라이버 챔피언십1995년 1회(스바루 임프레자)
WRC 통산 우승25승
주요 탑승 팀·차량스바루 월드 랠리 팀, 포드 월드 랠리 팀, 시트로엥 등
콜린 맥레이
콜린 맥레이 — ‘If in doubt, flat out’을 온몸으로 살았던 랠리의 영원한 아이콘 · 사진 Andy,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스코틀랜드의 흙먼지 속에서 피어난 레이싱 혈통

1968년 8월 5일, 스코틀랜드 랭커크셔에서 태어난 콜린 스티벤슨 맥레이는 태어날 때부터 바퀴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 지미 맥레이는 스코틀랜드 랠리 챔피언십을 다섯 차례나 제패한 전설적인 랠리 드라이버였다. 아버지가 모터스포츠에 몸담은 가정 환경 속에서 콜린은 자동차와 속도에 대한 본능을 어린 시절부터 체득했다.

콜린이 랠리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처음에는 자국 영국의 국내 랠리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고, 포드 시에라, 포드 에스코트 등 다양한 차량을 몰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의 스타일은 처음부터 남달랐다. 다른 드라이버들이 노면 상태를 꼼꼼히 읽고 리스크를 계산하는 동안, 콜린은 직관과 용기로 가속 페달을 깊이 밟는 것을 선택했다. 이 무모해 보이는 용기가 훗날 그를 전설로 만든 바로 그 자질이었다.

1991년 스바루와 연을 맺으면서 맥레이의 커리어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스바루 레거시를 시작으로, 그 뒤를 이은 임프레자와의 조합은 세계 랠리 역사에 가장 강렬한 파트너십 중 하나로 기록된다. 스바루의 수평대향 4기통 터보 엔진 특유의 복싱 사운드와 맥레이 특유의 과감한 코너링은 스테이지 위에서 완벽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랠리 팬들은 곧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지미 맥레이에게서 물려받은 레이싱 DNA, 그것이 콜린 맥레이를 만들었다.

지미 맥레이는 누구인가
지미 맥레이는 스코틀랜드 랠리 챔피언십 5회 우승자로, 영국 랠리 역사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버다. 콜린 맥레이의 남동생 앨리스터 맥레이 역시 WRC에 참가한 랠리 드라이버로, 맥레이 가문은 명실상부한 모터스포츠 가문이다.

1995년 — 최연소 WRC 챔피언의 탄생

콜린 맥레이
콜린 맥레이 · 사진 Havard01,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95년 WRC 시즌은 콜린 맥레이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해다. 스바루 월드 랠리 팀의 일원으로 출전한 그는 시즌 내내 눈부신 퍼포먼스를 펼쳤고, 마침내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7세로, WRC 역사상 최연소 챔피언 기록이었다(이 기록은 이후 다른 드라이버들에 의해 경신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무게감은 여전히 랠리 역사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챔피언십 결정전은 그야말로 드라마였다. 시즌 막판까지 팀 동료인 카를로스 사인츠와의 치열한 포인트 경쟁이 이어졌고, 최종 랠리에서 맥레이는 특유의 공격적인 주행으로 승기를 잡았다. 스바루 임프레자 555의 파란 차체가 먼지를 일으키며 스테이지를 질주하는 장면은 오늘날까지도 랠리 역사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회자된다.

이 챔피언십 우승은 단순히 타이틀 하나를 더한 것이 아니었다. 콜린 맥레이라는 이름이 세계 모터스포츠의 주류 무대로 올라온 순간이었고, 스바루 임프레자가 랠리카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과감하고 드라마틱한 드라이빙 스타일이 전 세계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수많은 팬들이 랠리라는 스포츠에 새롭게 매료되었다. 콜린 맥레이는 랠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한 전도사이기도 했다.

만 27세에 WRC 드라이버 챔피언십 제패 — 스바루 임프레자 555와 함께 쓴 전설의 첫 장.

스바루 임프레자 555란
555는 스바루 임프레자의 WRC 랠리 버전을 후원했던 말보로 555 담배 브랜드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파란 바탕에 노란 ‘555’ 로고가 박힌 이 차는 1990년대 WRC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랠리카 중 하나로 손꼽힌다.

‘If in doubt, flat out’ — 하나의 문장이 된 드라이빙 철학

‘If in doubt, flat out(의심이 들면 그냥 밟아라).’ 이 짧은 문장은 콜린 맥레이의 드라이빙 철학을 완벽하게 요약한다. 랠리에서는 노면 정보가 불완전하고, 코너의 각도가 예상과 다르고, 페이스 노트가 현실과 어긋나는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드라이버는 불확실성 앞에서 속도를 줄인다. 맥레이는 달랐다. 그는 불확실성을 오히려 더 빠르게 돌파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의 이 철학은 단순한 무모함이 아니었다. 탁월한 차체 조종 감각과 타고난 반사 신경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코너를 진입하면서 사이드브레이크를 짧게 당겨 차의 뒤를 흘리고, 카운터스티어로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동시에 가속 페달을 밟는 맥레이의 드라이빙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였다. 관중들은 그가 거의 통제 불능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절묘하게 차를 붙잡아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장면에 열광했다.

하지만 이 철학은 동시에 수많은 사고의 원인이기도 했다. 맥레이는 WRC 커리어 동안 수차례의 롤오버와 오프로드 이탈 사고를 겪었다. 일부 시즌에서는 잠재적 챔피언십 포인트를 리타이어로 날리기도 했다. 팀 입장에서는 때로 뜨거운 감자 같은 드라이버였다. 그러나 팬들의 입장에서 맥레이는 언제나 가장 보고 싶은 드라이버였다. 그가 스테이지에 있는 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랠리라는 스포츠는 위험을 감수하는 예술이다. 그 예술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현한 드라이버가 콜린 맥레이였다. 오늘날도 수많은 랠리 팬들과 드라이버들이 그의 이름을 거론할 때면 으레 이 문장이 따라온다. ‘If in doubt, flat out.’ 그것은 맥레이가 랠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다.

‘If in doubt, flat out’ — 이 말이 명언이 된 건 그가 실제로 그렇게 달렸기 때문이다.

포드와 시트로엥 — 챔피언의 방황과 성숙

콜린 맥레이
콜린 맥레이 · 사진 The original uploader was Zebrafive at English Wikipedia .,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1995년 챔피언십 이후 콜린 맥레이는 스바루와의 계약을 연장하며 타이틀 방어에 나섰지만, 이후 시즌들은 쉽지 않았다. 1996년과 1997년에도 여러 차례의 스테이지 우승을 기록했지만, 챔피언십 타이틀은 다시 손에 잡히지 않았다. 롤오버 사고와 기계 결함이 겹치면서 포인트 경쟁에서 번번이 뒤처졌다. 스바루와의 계약이 끝난 뒤, 맥레이는 1999년 포드 월드 랠리 팀으로 이적했다.

포드 포커스 WRC를 몰고 참전한 맥레이는 1999년 WRC 시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여러 랠리에서 우승하며 챔피언십 경쟁에 뛰어들었고, 시즌 막판까지 타이틀 다툼을 이어갔다. 하지만 최종 타이틀은 리처드 번즈의 손에 돌아갔다. 맥레이는 포드에서도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며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포드 포커스의 파란 차체가 설원을 가르거나 자갈길을 질주하는 장면은 당시 수많은 랠리 팬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이후 맥레이는 시트로엥으로 이적해 자동 변속기 기반의 최첨단 WRC 머신을 경험했다. 시트로엥 크산트 WRC를 몰며 커리어의 마지막 WRC 풀 시즌들을 보낸 그는 여전히 번뜩이는 재능을 보였지만, 팀 내 자원 배분과 머신 개발 방향이 맞지 않으면서 이전과 같은 전성기를 재현하지는 못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맥레이는 WRC 풀 시즌 참가를 줄이고 다카르 랠리 등 다른 오프로드 대회에도 도전하면서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포드 포커스 WRC의 의미
포드 포커스 WRC는 1999년 WRC 무대에 데뷔하면서 포드의 랠리 복귀를 알린 머신이다. 콜린 맥레이가 가장 먼저 이 차를 타고 WRC 승리를 가져왔으며, 이후 마르쿠스 그뢰홀름 등의 드라이버가 이 차로 챔피언십을 제패했다.

If in doubt, flat out.

— 콜린 맥레이 / 그의 드라이빙 철학을 대표하는 말

게임 속에서 다시 태어난 전설 — 콜린 맥레이 랠리 시리즈

콜린 맥레이라는 이름이 모터스포츠 팬을 넘어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까지 각인된 데에는 코드마스터스가 개발한 ‘Colin McRae Rally’ 시리즈의 공이 지대하다. 1998년 처음 출시된 이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PSX) 플랫폼에서 사실감 넘치는 랠리 경험을 제공하며 단숨에 랠리 게임 장르의 기준점이 되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물리 엔진과 다양한 노면 재현이 강점이었고, 콜린 맥레이의 실제 드라이빙 스타일을 게임 안에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 팬들을 열광시켰다.

시리즈는 이후 매년 또는 격년으로 후속작을 이어가며 진화했다. ‘Colin McRae Rally 2.0’은 전작의 물리 엔진을 한 단계 다듬으며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2005년 출시된 ‘Colin McRae Rally 2005’는 챔피언십 모드와 커리어 모드를 나누어 더욱 풍성한 콘텐츠를 제공했다. 6개국 랠리에 도전하는 챔피언십 구조와 다양한 언락 시스템은 당시 레이싱 게임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콜린 맥레이 랠리 2005’는 국내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꽤 오랜 기간 회자된 타이틀이다.

이후 코드마스터스는 2013년 모바일 플랫폼을 겨냥해 ‘Colin McRae Rally(2013)’를 출시했다. 챔피언십, 싱글 랠리, 싱글 스테이지로 나뉜 게임 모드와 총 24개의 스테이지 구성은 모바일 게임으로서의 볼륨을 나름 충실히 채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의 한계로 콘솔·PC 시리즈만큼의 깊이는 아니었지만, 콜린 맥레이라는 이름의 브랜드 파워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시리즈는 이후 ‘DiRT’ 브랜드로 계승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드마스터스는 맥레이 사후에도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상당 기간 그의 이름을 시리즈 타이틀에 유지했다. 레트로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오늘날에도 초대 ‘Colin McRae Rally(PSX)’ 타이틀의 도전 과제를 클리어하는 ‘마스터리’에 도전하는 팬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어, 이 게임이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콜린 맥레이의 이름은 게임 패키지 위에서도, 스테이지의 먼지 속에서도 똑같이 빛났다.

DiRT 시리즈로의 계승
콜린 맥레이 랠리 시리즈는 2007년부터 ‘DiRT’ 브랜드로 리브랜딩되었다. DiRT 시리즈는 랠리뿐 아니라 다양한 오프로드 장르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후 ‘DiRT Rally’, ‘DiRT Rally 2.0’ 등 랠리 시뮬레이션에 특화된 스핀오프 타이틀로도 이어졌다.

비극적인 마지막 — 2007년 9월 15일

콜린 맥레이
콜린 맥레이 · 사진 Nickgleris,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2007년 9월 15일, 스코틀랜드 랭커크셔. 콜린 맥레이는 만 39세의 나이에 헬리콥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이 직접 조종하던 헬리콥터가 추락하면서 아들 조니(당시 5세)와 아들의 친구, 그리고 성인 탑승자와 함께 사망했다. 랠리 스테이지 위에서는 어떤 위험도 통과해 나왔던 그가, 조용한 스코틀랜드의 하늘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사고 소식은 전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WRC 시즌이 진행 중이었고, 경쟁 드라이버와 팀 관계자들은 잇따라 깊은 애도를 표했다. 스바루, 포드, 시트로엥 등 그가 몸담았던 팀들이 공식 성명을 통해 그를 추모했으며, 그의 고향 랭커크셔에는 조기가 게양되었다. 수많은 팬들이 직접 꽃과 메모를 들고 그의 집 앞을 찾았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이 글에서는 조사 결과에 대한 단정을 피한다.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이 랠리 커뮤니티 전체에 깊은 슬픔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특히 어린 아들과 함께 사고를 당했다는 점이 비극의 무게를 더했다. 모터스포츠 세계는 그를 잃은 빈자리를 오래도록 느꼈고, 그 슬픔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맥레이의 아버지 지미 맥레이는 아들과 손자를 한날에 잃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가족의 비통함과 랠리 커뮤니티의 집단적 슬픔 속에서, 콜린 맥레이라는 이름은 더욱 강하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졌다. 때로는 비극이 전설을 영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더 오래 달렸더라면 어떤 장면들을 만들어냈을지를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스테이지 위에서는 어떤 위험도 뚫어낸 그가, 스코틀랜드의 하늘에서 영원히 멈췄다.

유산 — 콜린 맥레이가 랠리에 남긴 것들

콜린 맥레이는 WRC에서 25승을 기록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그보다 더 많은 우승을 기록한 드라이버들이 있다. 세바스티앙 로브나 세바스티앙 오지에처럼 압도적인 챔피언십 횟수를 자랑하는 드라이버들과 비교하면 타이틀 개수 하나뿐이다. 그러나 랠리의 역사를 논할 때 콜린 맥레이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숫자 때문이 아니다.

그는 랠리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세상에 보여줬다. 가속 페달을 깊이 밟은 채 흙먼지를 가르며 코너를 돌파하는 그의 모습은 모터스포츠를 스포츠 이상의 무언가로 격상시켰다. 그의 드라이빙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인간적으로 달릴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계산보다 본능, 신중함보다 용기, 안전보다 전진 — 그것이 콜린 맥레이의 방식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게임 시리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랠리라는 스포츠를 소개했다. 직접 스테이지에 가서 경기를 관람할 수 없었던 수많은 팬들이 조이스틱을 손에 쥐고 맥레이의 드라이빙을 간접 체험했다. 이 게임들이 만들어낸 랠리 팬덤은 실제 WRC 관중 증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을 만큼, 그의 문화적 영향력은 스테이지 밖으로도 넓게 퍼졌다.

오늘날 WRC 드라이버들은 여전히 콜린 맥레이를 이상(理想)으로 거론한다. 그가 없었더라면 랠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적어도 덜 화려하고, 덜 용감하고, 덜 아름다웠을 것이다. 맥레이는 랠리에 단순히 승리를 더한 것이 아니라, 랠리에 정신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지금도 흙먼지가 날리는 스테이지 어딘가에 살아 있다.

콜린 맥레이는 랠리에 승리를 더한 것이 아니라, 랠리에 정신을 불어넣었다.

한국 팬들의 기억 속 콜린 맥레이

한국에서 콜린 맥레이를 처음 접한 경로를 물으면 대다수의 팬들은 게임을 꼽는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PC방 문화가 절정을 달리던 시기에 ‘Colin McRae Rally’ 시리즈는 레이싱 게임 코너의 단골 타이틀이었다. WRC 중계가 지금처럼 쉽게 접근 가능하지 않았던 시절, 많은 한국의 레이싱 팬들에게 이 게임 시리즈가 랠리라는 스포츠의 첫 창문이었다.

‘콜린 맥레이 랠리 2005’의 챔피언십 모드와 커리어 모드, 잠금 해제 시스템은 당시 국내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활발하게 공략이 공유되었다. 코드마스터스 특유의 랠리 물리 엔진이 주는 손맛은 다른 레이싱 게임과 확연히 달랐고, 그 느낌을 기억하는 한국 유저들은 지금도 종종 온라인 게임 포럼에서 향수를 나눈다. 루리웹과 같은 국내 게임 커뮤니티에서 콜린 맥레이 랠리 시리즈를 그리워하는 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것은 그 인상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말해준다.

WRC 자체에 대한 관심도 이 게임 시리즈를 통해 커진 측면이 있다. 게임 속에서 임프레자를 몰며 스웨덴 눈밭과 코르시카 산악지대를 달리던 경험이 실제 WRC 중계를 찾아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는 팬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 WRC를 위성·케이블 채널로 시청하거나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찾아보는 팬층이 형성된 데에는, 콜린 맥레이 랠리 시리즈라는 문화적 접점이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맥레이가 2007년 세상을 떠났을 때, 국내 게임·모터스포츠 커뮤니티에도 추모의 물결이 이었다. 단순히 게임 캐릭터나 유명 드라이버를 넘어, 그들의 청소년기 레이싱 경험을 함께한 인물을 잃은 듯한 슬픔이었다. 콜린 맥레이는 한국 팬들에게도, 게임 패드를 통해 전해진 흙먼지의 감각과 함께, 언제나 특별한 이름으로 남아 있다.

한국 팬의 시선

한국 팬들에게 콜린 맥레이는 무엇보다 먼저 게임 속 인물이었다. 1990년대 말 플레이스테이션과 PC의 보급이 확대되던 시기, 코드마스터스의 ‘Colin McRae Rally’ 시리즈는 국내 레이싱 게임 팬들에게 랠리라는 장르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WRC 경기를 TV로 접할 수 있는 채널이 제한적이었던 시절, 많은 이들이 조이스틱을 통해 스바루 임프레자를 처음 몰아봤고, 진흙탕과 눈밭을 가르는 사이드브레이크 턴의 손맛을 통해 랠리에 입문했다. 이 게임 시리즈를 경험한 세대는 지금 30~40대가 되어, 루리웹이나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여전히 그 시절의 감흥을 공유하고 있다. 콜린 맥레이라는 이름은 스테이지 위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의 PC방과 게임 패드 위에서도 전설이 되었다.

콜린 맥레이는 완벽한 챔피언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 자주 길을 벗어났고, 너무 자주 무너졌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스테이지를 달리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드라이버보다 완벽했다. 의심이 드는 순간에도 가속 페달을 밟는 용기 — 그것이 그가 랠리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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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이미지 크레딧
  • 콜린 맥레이 — Andy,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 콜린 맥레이 — Havard01,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콜린 맥레이 — The original uploader was Zebrafive at English Wikipedia .,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 콜린 맥레이 — Nickgleris,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