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오프로드

켄 블록과 짐카나 — 모터스포츠를 엔터테인먼트로 바꾼 사나이

아스팔트 위에 타이어 연기가 피어오르고, 차 한 대가 도시 한복판을 무대 삼아 춤을 춘다. 켄 블록은 레이싱카를 단순한 경쟁 도구가 아닌 퍼포먼스 예술의 매개체로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그가 ‘짐카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은 단순한 드라이빙 영상이 아니라, 모터스포츠 역사 전체를 뒤흔든 새로운 문화 코드였다.

3줄 요약
1켄 블록(1967~2023)은 짐카나 시리즈로 유튜브 기반 모터스포츠 콘텐츠의 선구자가 되었다.
2단순 레이싱이 아닌 도심·오프로드·랜드마크를 배경으로 한 드리프트 퍼포먼스로 수억 뷰를 기록했다.
3포드, 아우디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며 드라이버이자 마케터로서 전무후무한 입지를 구축했다.

이 글은 켄 블록이라는 한 인간이 어떻게 모터스포츠의 문법을 바꾸었는지를 추적한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세례를 받고 DC 슈즈 공동창업자로 먼저 이름을 알린 그는, 마흔을 앞둔 나이에 핸들을 잡고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섰다. 랠리 무대에서 익힌 드리프트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극적으로 보여줄 영상 언어의 결합 — 그것이 바로 짐카나였다. 경쟁이 아닌 퍼포먼스, 순위표가 아닌 뷰카운터, 서킷이 아닌 도시 전체가 그의 무대였다. 켄 블록이 남긴 궤적은 모터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선명하게 빛난다.

한눈에 보는 켄 블록
본명케네스 폴 블락 (Kenneth Paul Block)
출생1967년 11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터스포츠 본격 데뷔2005년
대표 시리즈짐카나(Gymkhana) 비디오 시리즈
협업 브랜드포드(Ford), 아우디(Audi) 등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
켄 블록
켄 블록과 짐카나 — 모터스포츠를 엔터테인먼트로 바꾼 사나이 · 사진 Aaron Bridgman,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DC 슈즈에서 랠리 무대로 — 켄 블록의 예외적인 출발

케네스 폴 블락은 1967년 11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속도와 아드레날린을 사랑했지만, 그의 첫 번째 무대는 레이싱 트랙이 아니었다. 1990년대 스케이트보드와 익스트림 스포츠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 다미안 더피와 함께 DC 슈즈(DC Shoes)를 공동 창업하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최전선에 섰다. DC 슈즈는 단순한 신발 회사가 아니라 스케이트·스노우보드·BMX 문화와 맞닿은 아이덴티티 그 자체였고, 켄 블록은 그 속에서 마케팅과 퍼포먼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그가 모터스포츠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2005년의 일이다. 이미 서른일곱의 나이였지만, 그는 미국 랠리 선수권(American Rally Association, ARA 전신)에 뛰어들었다. 대부분의 프로 레이서들이 카트 시절부터 경력을 쌓아 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출발이었다. 늦은 시작이 핸디캡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켄 블록은 오히려 그 ‘아웃사이더 서사’를 자신만의 강점으로 전환시켰다. 그의 랠리 경력은 기술적 숙련도를 쌓는 데 그치지 않고, 훗날 짐카나 시리즈를 탄생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감각적 밑천이 되었다.

DC 슈즈 시절 익힌 마케팅 감각과 랠리 무대에서 다듬어진 드라이빙 기술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 — 그것이 켄 블록이 단순한 ‘빠른 드라이버’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그는 레이싱카를 모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무대를 설계하는 크리에이터였다. 두 개의 정체성을 오가며 그는 아직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어떤 새로운 영역을 향해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DC 슈즈란?
1994년 켄 블록과 다미안 더피가 공동 창업한 미국의 액션 스포츠 풋웨어·어패럴 브랜드. 스케이트보더 켄 다이크와의 초기 협업으로 스케이트 컬처 씬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 스노우보드·모토크로스·BMX 등 익스트림 스포츠 전반을 아우르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짐카나란 무엇인가 — 경기장 밖에서 태어난 예술

켄 블록
켄 블록 · 사진 maksimaalinen atakki,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짐카나(Gymkhana)는 원래 승마나 자전거 경기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정해진 콘이나 장애물 사이를 정확하게 통과하는 능력을 겨루는 형식을 뜻한다. 자동차 세계에서는 파일런 사이를 드리프트와 스핀으로 빠르게 누비는 기술 경연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켄 블록이 2008년 유튜브에 첫 번째 짐카나 영상을 업로드했을 때, 이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켄 블록의 짐카나는 기록이나 순위를 다투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도시의 광장, 공항의 활주로, 유명 랜드마크가 즐비한 거리 — 현실의 공간 자체가 세트장이 되었고, 자동차는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배우가 되었다. 카메라 앵글, 음악, 편집의 리듬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이 영상들은 ‘모터스포츠 콘텐츠’라기보다 ‘액션 영화의 한 장면’에 가까웠다. 관객들은 영상을 보면서 경쟁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도약을 기대하며 숨을 참았다.

짐카나 시리즈는 특히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폭발적 성장과 시기적으로 맞물렸다. 2009년에 공개된 ‘짐카나 투(Gymkhana TWO)’는 수천만 뷰를 기록하며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의 레이더에 켄 블록의 이름을 또렷이 새겼다. ‘짐카나 쓰리(Gymkhana THREE)’는 두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그 복잡한 구성 안에서도 켄 블록은 단순히 훌륭한 드라이버가 아닌 마케터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상은 자동차 회사가 돈을 들여 만드는 광고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싶어 하는 ‘바이럴 콘텐츠’의 원형을 제시한 사례이기도 했다.

짐카나는 경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스팔트를 캔버스 삼아 그려 낸 한 편의 시였다.

포드와의 동행 — 머신이 이야기를 만들 때

켄 블록의 짐카나 시리즈 초기를 함께한 파트너는 포드(Ford)였다. 포드 피에스타, 포드 포커스 RS WRC, 포드 피에스타 ST — 이 차들은 단순한 협찬 도구가 아니라 켄 블록이라는 서사의 일부였다. 특히 포드 피에스타를 기반으로 한 랠리카는 전 세계 팬들에게 ‘켄 블록의 차’로 각인될 만큼 상징성을 가졌다. 포드 입장에서도 이 협업은 TV 광고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젊은 세대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기회였다.

짐카나 시리즈 중 가장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 중 하나는 ‘짐카나 파이브(Gymkhana FIVE)’다. 이 영상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포드 피에스타 ST를 몰아 도시의 언덕길, 트램 노선, 부두 등을 종횡무진하며 탐험하는 내용이었다. 실제 도로를 무대로 한 이 촬영은 방대한 사전 준비와 수백 명의 스태프가 투입된 준영화 규모의 프로덕션이었고, 완성된 영상은 그 규모와 완성도 그대로 글로벌 바이럴이 되었다. 자동차 브랜드가 스포츠를 ‘광고의 도구’로만 바라보던 시대를 넘어서는 전환점이었다.

켄 블록은 포드와의 협업을 통해 WRC(세계 랠리 선수권) 무대에도 도전했다. 그가 WRC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냉정하게 짚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WRC 참전은 짐카나가 단순한 ‘쇼’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하려는 치열한 시도였다. 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레이서라는 두 역할 사이에서 그는 언제나 진지했다.

WRC와 짐카나, 어떻게 다른가?
WRC(World Rally Championship)는 험준한 특별 구간을 무대로 순수한 속도와 내구성을 겨루는 진지한 경쟁 스포츠다. 짐카나는 정해진 공간에서 드리프트·스핀 등 기술의 정확성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기반 형식으로, 두 장르는 목적과 무대 설정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켄 블록은 이 두 세계를 동시에 넘나들며 각각의 매력을 대중에게 전달한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아우디와의 마지막 협업 — 호니 AD가 품은 유산

켄 블록
켄 블록 · 사진 CALChux,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켄 블록의 후반기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아우디(Audi)다. 그는 자신의 팀 ‘후니건 레이싱 디비전(Hoonigan Racing Division)’을 통해 아우디와 손을 잡고 ‘짐카나 일렉트릭(Gymkhana Electric)’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머신은 ‘S1 에코 익스트림(Audi S1 Hoonitron)’으로, 아우디와 켄 블록의 협업으로 특별 개발된 짐카나 전용 전기차였다. 이 차는 2000년대 초중반 아우디가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연속 우승을 일궈낸 전설적인 머신의 DNA를 계승하는 헤리티지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다.

아우디 르망 연승의 주역인 톰 크리스텐센(Tom Kristensen)과 리날도 카파렐리(Rinaldo Capello) 같은 레전드들의 이름이 깃든 머신의 계보를 이어받아 켄 블록이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펼친 이 영상은 전기차 시대를 향한 모터스포츠의 선언처럼 읽혔다. 폭발적인 사운드 대신 정숙함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가속감, 타이어 연기 속에서도 고요한 전기 드라이브트레인 — 이 대비 자체가 하나의 미학이었다.

비극적이게도 켄 블록은 2023년 1월, 유타주 자신의 사유지에서 스노모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아우디와의 짐카나 일렉트릭 영상은 그가 공개한 마지막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가 되었고, 팬들에게는 그의 진화하는 창의성과 미래에 대한 의지를 마지막으로 담은 유언 같은 작품으로 남았다. 모터스포츠 커뮤니티는 물론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전기로 달리는 드리프트 — 켄 블록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래를 향해 핸들을 꺾고 있었다.

짐카나 쓰리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이 영상에서 켄 블록은 그가 단순히 좋은 드라이버 그 이상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 마케팅적으로 말이다.

— 지피코리아(GPKorea), 최고의 짐카나 영화 10편 리뷰 중

함께 무대를 만든 사람들 — 협력자들의 이야기

켄 블록의 짐카나는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그의 세계를 풍성하게 채운 수많은 협력자들이 있었다. 그중 포뮬러 드리프트(Formula Drift) 출신의 드라이버 반 기틴 주니어(Vaughn Gittin Jr.)와 제임스 딘(James Deane)은 켄 블록과 함께 드리프트의 예술적 가능성을 함께 확장시킨 인물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드리프트 씬을 이끌면서도, 켄 블록이 만들어 낸 짐카나라는 장르가 더 풍성하게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트래비스 파스트라나(Travis Pastrana)는 켄 블록과 함께 ‘후니건(Hoonigan)’ 정신을 공유한 핵심 협력자다. 파스트라나는 랠리와 모토크로스를 넘나드는 멀티 스포츠 선수로, 켄 블록과의 공동 작업에서 뛰어난 묘기를 선보이며 짐카나의 세계관을 더욱 넓혔다. 이처럼 켄 블록 주변에는 단순히 ‘빠른 드라이버’가 아니라 퍼포먼스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 집합적 에너지가 짐카나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진화시켰다.

후니건 레이싱 디비전이라는 팀 자체도 켄 블록의 세계관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결과물이었다. 후니건은 단순한 레이싱 팀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자 콘텐츠 제작 집단으로 기능했다. 헌신적인 팀원들, 영리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 그리고 켄 블록 본인의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 조직은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전례 없는 방식으로 브랜드를 구축했다.

드리프트와 쇼맨십 — 켄 블록이 바꾼 모터스포츠의 언어

켄 블록
켄 블록 · 사진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Abigailbaker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켄 블록 이전에도 드리프트는 존재했다. 일본의 D1 그랑프리, 미국의 포뮬러 드리프트, 그리고 WRC 무대에서도 드라이버들은 코너에서 차를 옆으로 눕히며 달렸다. 하지만 드리프트가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된 것은 켄 블록의 짐카나가 처음이었다. 코너를 공략하기 위한 기술로서의 드리프트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목적이고 이야기이고 아름다움인 드리프트 — 켄 블록은 이 새로운 문법을 세상에 설득했다.

그가 남긴 영향은 영상 콘텐츠의 형식에서도 두드러진다. 짐카나 이전, 자동차 관련 영상들은 대개 레이스 중계나 테크니컬한 리뷰 위주였다. 켄 블록 이후, 자동차 브랜드들은 스토리텔링과 영상미, 음악과 편집 리듬을 결합한 ‘시네마틱 드라이빙 콘텐츠’를 앞다투어 제작하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 BMW, 람보르기니, 포르쉐 — 어느 브랜드 할 것 없이 ‘짐카나 스타일’의 퍼포먼스 영상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켄 블록의 영향력을 방증한다.

더 나아가, 켄 블록은 모터스포츠가 ‘어렵고 먼’ 세계라는 인식을 허문 인물이기도 하다. 경기 결과와 포인트를 몰라도, 기술 규정을 몰라도, 그의 영상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이 진입 장벽의 제거는 결과적으로 전 세계 수억 명을 모터스포츠라는 세계의 문 앞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그가 창조한 ‘짐카나’라는 장르가 하나의 미디어 현상이자 문화적 사건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드리프트는 더 이상 기술이 아니었다 — 켄 블록의 손에서 그것은 언어가 되었다.

한국 렌즈 — 켄 블록이 한국 자동차 문화에 남긴 것

켄 블록의 짐카나 영상은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0년대 초, 유튜브 문화가 한국 10~20대 사이에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켄 블록의 짐카나 시리즈는 자동차에 관심 없던 청소년들까지 끌어들이는 관문이 되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커뮤니티와 카페에서는 그의 영상에 대한 분석 글이 넘쳐났고, ‘나도 저렇게 달리고 싶다’는 꿈을 가진 청소년들이 양산되었다. 한국의 드리프트 씬이 2010년대 들어 서서히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데에도 켄 블록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완성차 브랜드들도 켄 블록이 제시한 ‘시네마틱 드라이빙 퍼포먼스’ 포맷을 주목했다. 현대자동차는 WRC 참전을 재개하면서 퍼포먼스 중심의 영상 마케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고, 기아 역시 EV6를 활용한 역동적인 드라이빙 영상으로 글로벌 홍보를 펼쳤다. 짐카나가 제시한 ‘달리는 차 한 대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문법은 K-자동차 브랜드들의 글로벌 마케팅에도 조용하지만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켄 블록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23년 1월, 한국의 자동차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수많은 추모 글이 올라왔다. ‘짐카나로 자동차를 처음 좋아하게 됐다’, ‘켄 블록 영상 보며 드리프트를 배우고 싶었다’는 고백들이 쏟아졌다. 그가 한국 팬들과 직접 교류한 이벤트가 많지 않았음에도, 그의 영상이 만들어 낸 정서적 유대는 국경을 넘어 진심 어린 애도로 표현되었다. 켄 블록은 그렇게 한국 자동차 문화의 한 챕터에도 조용히 깃들어 있었다.

레전드의 빈자리 — 짐카나는 계속될 것인가

켄 블록
켄 블록 · 사진 Steven Harrell,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켄 블록이 세상을 떠난 이후, 후니건 레이싱 디비전과 그의 가족들은 그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갈지를 두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아직 짐카나 시리즈의 공식적인 계승 여부에 대해 명확한 발표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반 기틴 주니어, 트래비스 파스트라나 등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이 퍼포먼스 드라이빙 씬을 지켜 나가고 있다. 짐카나가 켄 블록이라는 이름과 너무나 강하게 결부된 만큼, ‘그 이후’를 상상하는 것은 팬들에게도, 업계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짐카나가 열어 놓은 장르 자체는 살아남아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드라이버와 크리에이터들이 켄 블록 스타일의 드라이빙 영상을 만들고, 아우디·포드를 비롯한 브랜드들도 전기차 시대를 배경으로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 흐름의 원점에 언제나 켄 블록이 있다는 사실은, 그의 창의성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장르의 DNA로 남았음을 의미한다.

켄 블록은 모터스포츠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남겼다. 빠른 것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정확하고 용감하고 창의적인 드라이빙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믿음 — 그것이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순위표 밖에서도, 시상대 없이도, 모터스포츠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아스팔트 위에서 직접 증명해 보였다.

후니건 레이싱 디비전(Hoonigan Racing Division)
켄 블록이 설립한 모터스포츠 팀 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후니건(Hoonigan)’이란 무모하게, 하지만 기술적으로 차를 몰며 즐기는 드라이버를 뜻하는 속어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팀은 레이싱 활동뿐 아니라 자체 유튜브 채널 운영, 의류·용품 브랜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터스포츠 문화를 확산시켜 왔다.

한국 팬의 시선

켄 블록의 짐카나 영상은 한국 자동차 문화에 조용하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2010년대 유튜브가 대중화되던 시기, 그의 영상은 자동차를 잘 몰랐던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모터스포츠는 이런 것일 수 있다’는 감각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국내 드리프트 커뮤니티가 서서히 형성되고, 퍼포먼스 드라이빙에 관심을 갖는 인구가 늘어나는 흐름의 저변에 켄 블록이 심어 놓은 씨앗이 있었다. 현대·기아와 같은 국내 완성차 브랜드들이 WRC 복귀나 고성능 라인업을 내세우며 시네마틱 드라이빙 영상 마케팅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켄 블록이 정의한 ‘보여주는 모터스포츠’의 문법이 업계 전반에 퍼진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날, 한국의 자동차 커뮤니티 곳곳에서 피어오른 추모의 목소리는, 그가 직접 한국을 찾지 않아도 이미 수많은 한국 팬들의 마음속 무대에서 달리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타이어 연기가 걷히고 나면, 아스팔트 위엔 검은 궤적이 남는다. 그것은 단순한 타이어의 흔적이 아니다. 켄 블록이 모터스포츠라는 언어로 세상에 남긴 서명이다. 그는 레이서였지만 동시에 아티스트였고, 마케터였지만 동시에 몽상가였다. 속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그 자유로움 — 넓은 광장, 연기 피어오르는 타이어, 그리고 한 대의 차가 만들어 내는 완벽한 원호. 켄 블록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고, 그 현실을 세상 모든 이의 화면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가 달리던 무대는 비어 있어도, 그가 그어 놓은 궤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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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이미지 크레딧
  • 켄 블록 — Aaron Bridgman,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켄 블록 — maksimaalinen atakki,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켄 블록 — CALChux,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 켄 블록 —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Abigailbaker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켄 블록 — Steven Harrell,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