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오프로드

란치아 랠리의 황금기 — 037과 델타가 쓴 전설

**1983년 봄, 포르투갈의 흙먼지 속에서 란치아 037이 터보 사륜구동 군단을 상대로 제조사 타이틀을 낚아챘다. 그것은 ‘후륜구동이 사륜구동을 이긴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 델타 HF 인테그랄레는 아예 WRC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6년 연속 제조사 타이틀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3줄 요약
1란치아 037은 후륜구동으로 그룹 B 제조사 타이틀을 획득한 마지막 머신이다.
2란치아 델타 HF 인테그랄레는 1987년부터 1992년까지 6년 연속 WRC 제조사 타이틀을 석권했다.
3란치아는 스트라토스, 037, 델타로 이어지는 계보로 드라이버 타이틀 6회와 제조사 타이틀을 포함한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화려한 랠리 전적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시작된 란치아라는 이름은 도로 위보다 흙먼지와 자갈 위에서 더욱 빛났다. 풀비아로 닦은 랠리 DNA는 스트라토스라는 괴물로 진화했고, 그 뒤를 037과 델타가 이어받아 세계 랠리 챔피언십(WRC)을 무대로 전설을 완성했다. 이 글은 란치아 랠리 황금기의 핵심인 두 머신, 037과 델타 HF 인테그랄레의 탄생·경쟁·영광·소멸을 따라가며, 그것이 오늘날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본다.

한눈에 보는 란치아 랠리 황금기
란치아 037 WRC 제조사 타이틀1983년 (후륜구동 마지막 우승)
란치아 델타 S4 방식풀타임 4WD, 공차중량 약 890kg (그룹 B)
델타 HF 인테그랄레 제조사 타이틀1987~1992년 6년 연속
란치아 WRC 드라이버 타이틀총 6회
그룹 B 폐지 시점1986년 시즌 종료 후 (안전 문제로 퇴출)
란치아 랠리
란치아 랠리의 황금기 — 037과 델타가 쓴 전설 · 사진 Alexandre Prevot from Nancy, France,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황금기 이전의 씨앗 — 풀비아에서 스트라토스까지

란치아의 랠리 역사는 1960년대 풀비아 HF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고 앙증맞은 앞바퀴굴림 쿠페였지만, 정밀한 핸들링과 경량 구조 덕분에 유럽 각지의 산악 랠리에서 꾸준히 입상했다. 당시 란치아는 순수 경주차가 아닌 ‘포장도로용 양산차를 랠리에 끌어내는’ 방식으로 경험을 쌓았고, 이 철학은 훗날 037 개발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진정한 도약은 1973년 스트라토스 HF의 등장이었다. 란치아와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 그리고 피아트 그룹의 지원이 합쳐진 이 미드십 머신은 ‘랠리만을 위해 태어난 차’의 원형을 제시했다. 페라리 디노의 V6 엔진을 미드에 얹은 스트라토스는 1974·1975·1976년 3년 연속 WRC 제조사 타이틀을 차지하며 란치아라는 이름을 랠리 역사의 중심에 박아 넣었다. 이 성과는 ‘랠리 전용 머신을 만들면 이긴다’는 명제를 세계 자동차 산업에 증명한 사건이었다.

스트라토스의 퇴장 후 란치아는 피아트 131 아바르트를 앞세우는 전략으로 잠시 방향을 틀었지만, 엔지니어링 팀의 머릿속에는 이미 더 야심 찬 프로젝트가 움트고 있었다. 그 결실이 바로 란치아 037이었다. 스트라토스처럼 랠리만을 위해 설계되었지만, 이번에는 당시 막 부상하던 ‘그룹 B’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겨냥했다.

그룹 B란?
1982년 FIA가 신설한 경주차 규정으로, 최소 200대 생산만 충족하면 엔진·구동 방식에 거의 제한이 없었다. 이 ‘무규제의 자유’는 폭발적인 기술 혁신을 낳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사고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037의 탄생 — 미드십 후륜구동의 마지막 도전

란치아 랠리
란치아 랠리 · 사진 Albmartiniracing at Italian Wikipedia,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란치아 037은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스트라토스의 정신적 후계자다. 1982년 공식 데뷔한 이 머신은 피아트 그룹 산하의 아바르트가 개발을 주도했으며, 란치아 베타 몬테카를로의 차체 구조를 기반으로 미드십 레이아웃을 채택했다. 엔진은 2.0리터 직렬 4기통 슈퍼차저 유닛으로, 터보차저가 아닌 루츠식 슈퍼차저를 선택한 것이 독특한 포인트였다. 최고출력은 경쟁 버전에서 320마력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037이 처음 WRC 무대에 등장했을 때 경쟁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미 아우디 콰트로가 4WD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있었고, 랠리 세계는 점점 ‘터보+사륜구동’의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륜구동인 037이 자갈과 눈 위에서 무슨 경쟁을 하겠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란치아 팀은 달랐다. 가벼운 차체, 날카로운 핸들링, 그리고 포장도로 구간에서의 탁월한 밸런스를 무기로 삼았다.

1983년 시즌, 037을 모는 마우로 만치니와 발터 뢰를은 저력을 발휘했다. 아우디 콰트로의 한한노 미코라가 드라이버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정작 제조사 타이틀은 란치아가 품었다. 037은 포르투갈, 아크로폴리스 등 상대적으로 포장 구간이 많은 랠리에서 집중적으로 포인트를 쌓으며 아우디를 따돌렸다. 그것은 후륜구동 머신이 WRC 제조사 타이틀을 가져간 역사상 마지막 순간이었고, 오늘날에도 ‘037의 1983년’은 기적에 가까운 성과로 기억된다.

037의 영광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1984년 아우디, 푸조, 포르쉐 등이 더욱 강력한 4WD 그룹 B 머신을 쏟아내면서 037은 경쟁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란치아 역시 이를 인식하고 후속 머신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가 1985년 등장한 란치아 델타 S4였다.

‘후륜구동이 사륜구동 군단을 꺾은 마지막 WRC 타이틀 — 1983년 란치아 037의 기적’

그룹 B의 광기 속으로 — 델타 S4와 비극

란치아 델타 S4는 037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계된 풀타임 4WD 랠리카였다. 이 머신은 란치아 역사상 최초의 풀타임 사륜구동 랠리카로, 890kg의 공차중량에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를 동시에 장착하는 독특한 복합 과급 방식을 채택했다. 저회전 영역에서는 슈퍼차저가, 고회전에서는 터보차저가 개입하여 터보랙을 최소화하는 영리한 설계였다. 최고출력은 경쟁 버전에서 500마력을 훌쩍 넘겼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1985년 WRC에 데뷔한 델타 S4는 즉각적인 경쟁력을 보여줬다. 헨리 투호넨을 비롯한 정상급 드라이버들이 S4의 핸들을 잡았고, 1985~1986년 시즌 동안 여러 랠리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룹 B는 점점 통제 불능의 방향으로 치달았다. 관중이 코스 바로 옆에 서 있고, 머신은 스키 점프대를 날아오르듯 지형지물을 넘나들었다. 파워는 무서웠고, 안전 장치는 불충분했다.

1986년은 그룹 B의 종말을 고한 비극적인 해였다. 투어르 드 코르스(코르시카 랠리)에서 헨리 투호넨과 코드라이버 세르조 크레스토가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같은 해 포르투갈 랠리에서도 관중이 사망하는 사고가 잇달았다. 결국 FIA는 1986년 시즌을 끝으로 그룹 B를 전격 폐지했다. 델타 S4는 잠재력을 채 꽃피우지 못한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고, 그룹 B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험하고 빠른 랠리카의 시대’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헨리 투호넨에 대하여
핀란드 출신 드라이버 헨리 투호넨은 1986년 코르시카 랠리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랠리 드라이버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의 죽음은 그룹 B 폐지를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팬들이 그를 기리고 있다.

델타 HF 인테그랄레의 등장 — 양산차가 왕이 된 시대

란치아 랠리
란치아 랠리 · 사진 Karl Buchka ( Basketofkittens ),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그룹 B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그룹 A였다. 그룹 A는 최소 5,000대 이상 양산된 일반 양산차를 기반으로 하는 규정으로, 그룹 B의 순수 경주차 개념과는 결이 달랐다. 란치아는 이 변화를 기민하게 읽었다. 마침 피아트 그룹이 1986년부터 판매하던 소형 해치백, 란치아 델타를 기반으로 WRC용 고성능 버전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란치아 델타 HF 4WD였고, 이후 더욱 강화된 버전인 HF 인테그랄레가 1987년 WRC 무대에 등장했다.

델타 HF 인테그랄레는 직렬 4기통 2.0리터 터보엔진과 풀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을 품은,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속은 전혀 다른 머신이었다. 비스코커플링 기반의 4WD 시스템은 전·후 토크 배분을 상황에 맞게 조율했고, 란치아의 엔지니어들은 그룹 A 규정 안에서 허용되는 모든 업그레이드를 끝까지 짜냈다. 경쟁 버전의 출력은 300마력 이상에 달했고, 차체는 광폭 타이어를 수납하기 위해 펜더 플레어가 추가되어 근육질 실루엣을 완성했다.

드라이버 라인업 역시 화려했다. 유하 칸쿠넨, 마르쿠 알렌, 미키 비아시온, 디디에르 오리올 등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들이 란치아 델타의 핸들을 잡았다. 이들은 서로 팀 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타 팀 경쟁자들을 공동으로 압도하는 이중 구도를 연출했다. 1988년에는 미키 비아시온이 드라이버 타이틀을 차지했고, 팀은 제조사 타이틀도 함께 가져갔다. 델타의 독주는 멈추지 않았다.

‘5,000대 이상의 양산차를 기반으로, 란치아 델타는 WRC를 6년 연속 지배했다’

037은 불가능을 증명했고, 델타는 지배를 완성했다. 란치아는 이 두 머신으로 세계에게 이탈리아 엔지니어링이 무엇인지 가르쳤다.

— 글로벌 모터스포츠 편집부 해설

6년 연속 — 제조사 타이틀의 제국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란치아 델타는 WRC 제조사 타이틀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6년 연속 제조사 타이틀은 당시 기준으로도, 이후 기준으로도 경이로운 성과였다. 경쟁자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포드, 미쓰비시, 스바루 등이 치열하게 도전장을 냈지만, 란치아 델타는 시즌마다 충분한 포인트를 쌓으며 왕좌를 지켰다.

이 시기 란치아의 성공 비결은 단순히 머신의 우수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마르티니 스폰서십을 등에 업은 풍부한 자금력, 피아트 그룹의 기술 지원, 그리고 개별 랠리의 특성을 분석하고 머신을 최적화하는 정교한 팀 전략이 맞물려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의 눈길에서도, 지중해의 자갈길에서도, 아프리카의 사막 먼지 속에서도 델타는 일관된 경쟁력을 유지했다.

드라이버 타이틀 역시 란치아 진영에서 다수 나왔다. 유하 칸쿠넨이 1987년과 1991년 두 차례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미키 비아시온은 1988·1989년 연속 타이틀을 차지했다. 디디에르 오리올도 란치아 머신으로 챔피언십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팀 내에서의 드라이버 경쟁이 결과적으로 팀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한 것이다. 이 시기 란치아는 단순한 랠리팀이 아니라 WRC 그 자체였다.

1992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란치아는 공식적으로 WRC에서 철수했다. 피아트 그룹 내부의 전략 재편, 자금 감소, 그리고 미쓰비시·스바루 등 일본 메이커들의 급격한 추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란치아의 퇴장은 갑작스럽기보다는 서서히 예고된 결말이었지만, 그것이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남긴 공백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랠리 열정이 WRC 무대에서 사라진 날이었다.

마르티니 레이싱 란치아
란치아의 WRC 황금기를 상징하는 시각적 아이콘은 마르티니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화이트-레드-블루 컬러 배합이다. 마르티니 & 로시의 스폰서십은 1970년대 스트라토스 시절부터 이어졌으며, 델타 인테그랄레의 이 컬러링은 오늘날 클래식카 경매에서도 프리미엄을 받는 요소로 꼽힌다.

037과 델타, 두 머신이 남긴 유산

란치아 랠리
란치아 랠리 · 사진 Tony Harrison,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란치아 037과 델타 HF 인테그랄레는 서로 전혀 다른 시대적 맥락에서 태어났지만, 공통적으로 ‘이탈리아 엔지니어링의 창의성’이라는 DNA를 공유한다. 037은 후륜구동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섀시 밸런스와 차체 경량화로 경쟁자를 이겼고, 델타는 평범한 양산 해치백을 기반으로 시대를 지배했다. 두 머신 모두 ‘있는 것에서 최대를 끌어낸다’는 란치아 특유의 철학을 구현했다.

오늘날 오리지널 란치아 037은 클래식카 경매에서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귀물로 대접받는다. 델타 HF 인테그랄레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마르티니 에디션이나 WRC 우승 이력이 있는 차대 번호가 확인된 개체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이 붙는다. 이탈리아 본국에서는 ‘인테그랄레 클럽’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매년 각지에서 클래식 랠리를 통해 그 시절의 소리와 냄새를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기술적 유산도 무시할 수 없다. 델타 HF 인테그랄레의 4WD 시스템과 차체 구조 개발 경험은 이후 피아트-란치아 그룹의 여러 모델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사륜구동 토크 배분의 정교함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앞선 기술이었으며, 이는 훗날 스바루 임프레자, 미쓰비시 에볼루션 등 라이벌 머신 개발에도 간접적인 자극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란치아라는 브랜드 자체는 이후 오랜 침묵기를 거쳤다. 2024년에는 스텔란티스 그룹 아래 란치아가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로 재출범하는 등 브랜드 부활 시도가 진행 중이다. 모터스포츠 복귀에 대한 기대감도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된다. 1983년의 037, 그리고 1987년부터 1992년까지의 델타가 쌓아올린 ‘란치아 랠리’의 이미지는 어떤 신차 발표보다도 강력한 브랜드 자산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037의 1983년은 후륜구동의 마지막 왕좌였고, 델타의 6년은 양산차 기반 랠리의 정점이었다’

한국 렌즈 — 모터스포츠 불모지에서 바라본 란치아의 전설

한국에서 1980년대 WRC는 극소수의 모터스포츠 마니아들만이 관심을 가졌던 먼 나라 이야기였다. 당시 국내에는 란치아 공식 판매망조차 없었고, 델타 HF 인테그랄레를 실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전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이후 모터스포츠 전문 잡지와 영상 매체를 통해 란치아 랠리의 존재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란치아 델타’는 한국 모터스포츠 마니아들의 드림카 리스트에 단골로 오르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출신 드라이버 이야기다. 한국은 모터스포츠 인프라가 오랫동안 부족했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국제 무대에 도전한 한국인 드라이버들이 있었다. 관련 기록들은 ‘모터스포츠의 불모지 한국에서 태어나 세계 정상에 오른 존재’라는 표현으로 그 어려움과 성취를 동시에 담아낸다. 란치아 델타가 WRC를 지배하던 바로 그 시절, 한국에서는 자동차 경주의 기초 인프라조차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대비를 이룬다.

오늘날 국내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한국 팬들은 유튜브·스트리밍을 통해 WRC를 실시간으로 즐기고, 클래식 랠리카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란치아 037이나 델타 인테그랄레를 소재로 한 모형·다이캐스트 제품의 국내 판매량도 해마다 증가한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비공식 언급도 들린다. 비록 한국 땅에서 란치아 랠리카가 실제로 달린 적은 없지만, 그 전설은 세대를 넘어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에게도 분명히 살아 있다.

란치아 랠리, 다시 불꽃을 피울 수 있을까

란치아 랠리
란치아 랠리 · 사진 Mr.choppers,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2024년 스텔란티스 그룹 아래서 란치아는 전기차 브랜드로의 전환을 발표하며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새로운 란치아 이에프카가 공개되었고, 브랜드 리런칭과 함께 모터스포츠 복귀에 대한 기대감도 고개를 들었다. 일부 보도에서는 32년 만의 귀환이 새로운 황금기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주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1980년대의 란치아는 피아트 그룹의 전폭적인 기술·자금 지원과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 풀, 그리고 시대가 허용한 독특한 규정의 조합 속에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WRC는 이미 하이브리드 시대로 접어들었고, 전통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의 참전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높아졌다. 새로운 경쟁자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촘촘한 방어선을 치고 있다. 란치아가 다시 WRC에 나선다면, 037과 델타가 했던 것처럼 ‘창의적 공학’으로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적이 필요하다. 그 가능성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어딘가에, 043과 델타가 새긴 DNA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팬들은 기다린다. 마르티니 스트라이프가 새겨진 하얀 차체가 자갈을 박차고 나아가는 장면을, 다시 한번.

한국 팬의 시선

한국에서 1980년대 WRC는 극소수의 마니아만이 알던 먼 나라 이야기였다. 란치아 공식 판매망도, 델타 인테그랄레를 실물로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영상 매체를 통해 란치아 랠리의 전설은 국내에도 스며들었고, 오늘날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의 드림카 리스트에 ‘델타 인테그랄레’는 빠지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모터스포츠 불모지로 불리던 한국에서도 국제 무대에 도전한 드라이버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들이 꿈꾸던 머신 중 하나가 바로 란치아였다는 사실은 그 전설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

037이 1983년의 먼지 속에서 사륜구동 군단을 꺾었을 때, 세상은 그것이 마지막 기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델타가 6년 연속 왕좌를 지켰을 때, 세상은 그것이 다시 없을 지배라고 했다. 란치아 랠리의 역사는 그 두 가지 ‘다시 없을’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다. 흙먼지와 자갈이 날리는 특별구간 어딘가에서, 마르티니 스트라이프의 화이트 머신이 코너를 돌아 사라질 때마다 우리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 전설이란, 잊혀지지 않는 것들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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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이미지 크레딧
  • 란치아 랠리 — Alexandre Prevot from Nancy, France,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란치아 랠리 — Albmartiniracing at Italian Wikipedia,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란치아 랠리 — Karl Buchka ( Basketofkittens ),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란치아 랠리 — Tony Harrison,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란치아 랠리 — Mr.choppers,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