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모터스포츠

한국 F1 드라이버는 언제 나올까? 현실과 가능성을 따지다

쿠팡플레이를 통해 F1 열기가 한국 안방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지금, 우리는 여전히 한 가지 질문 앞에서 멈춰 선다. ‘언제쯤 그리드 위에 태극기가 걸릴까?’ F1 역사 70년 넘도록 단 한 명의 한국인 드라이버도 정규 시트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건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켜켜이 쌓인 결과다.

3줄 요약
1한국은 F1 시청 열기에 비해 선수 배출 인프라가 극히 취약하며, 카트 입문부터 수십억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2일본의 요코 카타야마, 중국의 마칭화 등 아시아 드라이버 사례는 한국에게 거울이자 경고다.
3전기차 전환과 포뮬러 E 등 새로운 판이 열리는 지금, 한국 드라이버에게도 좁은 틈새가 생기고 있다.

이 글은 ‘왜 한국인 F1 드라이버가 없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출발해, 그 구조적 원인을 낱낱이 짚고, 아시아 이웃 나라들의 사례를 거울 삼아, 마침내 ‘그래도 가능성은 있는가’라는 희망의 문 앞까지 함께 걸어간다. 쉽게 낙관하지도, 섣불리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한국 모터스포츠의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눈에 보는 한국 F1 현황
한국인 F1 정규 드라이버역대 0명
F1 드라이버 시트 수시즌당 20석
F1 입문 경로 평균 비용카트~F2 기준 수십억 원대
한국 F1 팬덤 성장쿠팡플레이 중계 이후 급증
아시아 F1 드라이버 선례일본·중국·인도 드라이버 배출 실적 있음
한국 F1 드라이버
한국 F1 드라이버는 언제 나올까? 현실과 가능성을 따지다 · 사진 Tokumeigakarinoaoshima,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그리드 위에 없는 태극기 — 왜 지금도 ‘0명’인가

포뮬러 원의 그리드에는 매 시즌 20개의 시트가 존재한다. 세계 수십억 명의 인구 중 단 20명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브라질, 영국,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같은 전통 모터스포츠 강국들이 그 자리를 꾸준히 채워왔고, 근래에는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그 명단에 없다. 단 한 번도.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F1 팬덤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다. 쿠팡플레이가 F1 중계권을 확보하고, 윤재수 해설위원의 열정적인 해설이 더해지면서 한국의 F1 시청층은 빠르게 두터워졌다. SNS와 유튜브에는 F1 관련 한국어 콘텐츠가 넘쳐나고, ‘드라이버 덕질’을 즐기는 젊은 팬들도 늘었다. 그런데 이 열기가 왜 선수 배출로 이어지지 않는 걸까? 팬 숫자와 드라이버 배출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F1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서는 팬이 많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자원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카트 훈련, 그 위에 쌓이는 포뮬러 4, 포뮬러 3, 포뮬러 2의 긴 계단,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뒷받침하는 막대한 자금과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 한국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구멍이 크게 뚫려 있다.

‘팬덤은 세계적인데, 드라이버는 없다’ — 이 역설이 한국 모터스포츠의 현주소다.

카트에서 F2까지 — 천문학적 비용과 인프라의 벽

한국 F1 드라이버
한국 F1 드라이버 · 사진 Morio,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F1 드라이버를 꿈꾸는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보통 만 7~8세, 늦어도 10세 이전에 카트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카트는 모터스포츠의 알파벳이고, F1 드라이버 중 루이스 해밀턴, 막스 페르스타펜 등 거의 모든 챔피언이 카트에서 두각을 나타낸 경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카트를 ‘진지하게’ 시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높은 장벽이라는 데 있다.

카트 한 대의 가격은 수백만 원에서 시작하지만, 경쟁력 있는 레이싱 카트와 스페어 부품, 연간 대회 참가비, 전문 코치 비용, 해외 대회 원정 비용까지 합산하면 연간 수천만 원은 기본이다. 그리고 포뮬러 4, 포뮬러 3, 포뮬러 2로 올라갈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포뮬러 2 풀 시즌을 소화하려면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대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상식이다. 유럽의 강자들은 이 비용을 국가 지원, 자동차 제조사 아카데미, 그리고 풍부한 사모 스폰서십으로 충당한다. 한국에는 이 구조가 사실상 없다.

또한 국내 모터스포츠 인프라 자체가 빈약하다. 한국의 카트 서킷 수는 유럽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적고, 청소년 드라이버를 체계적으로 발굴·육성하는 전문 아카데미나 연맹 차원의 엘리트 프로그램도 성숙하지 못한 상태다. 영재를 발굴하더라도 국내에서 키울 구조가 없기 때문에, 결국 유럽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정은 극소수다. 이 구조적 빈곤이 70년 넘게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을 가로막아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F1 드라이버의 일반적인 성장 경로
카트(7~10세) → 포뮬러 4(15~17세) → 포뮬러 3(17~19세) → 포뮬러 2(19~22세) → F1(22세 전후). 각 단계는 1~3년이 소요되며, 포뮬러 2까지의 총 비용은 팀 지원 없이 자력으로 진행할 경우 수십억 원에 달할 수 있다.

문화적 장벽 — 모터스포츠는 ‘공부 대신’ 하는 것이 아니다

비용 문제만큼이나 깊은 장벽이 있다. 바로 문화다. 한국 사회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우리 아이를 레이서로 키우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단순한 진로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정면으로 맞서는 선언에 가깝다.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학업 성취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강한 사회적 통념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만 8세 아이를 카트 시트에 앉히는 결정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물론 최근 들어 스포츠 특기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손흥민 선수의 성공은 ‘운동도 엘리트 커리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많은 가정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축구, 야구, 수영처럼 국내 인프라가 확립된 종목과 달리, 모터스포츠는 ‘국내에서 커리어를 완성할 수 없는 종목’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성공하려면 어릴 때부터 유럽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높은 심리적 장벽을 만든다.

게다가 F1 드라이버는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능력만 요구하지 않는다. 다국어 커뮤니케이션 능력, 엔지니어링에 대한 깊은 이해, 글로벌 미디어 대응력, 스폰서와의 관계 관리 등 복합적인 역량이 필요하다. 이 역시 어릴 때부터 국제적 환경에 노출되어야 자연스럽게 습득될 수 있는 자질들이다.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이 경험을 쌓기가 매우 어렵다.

아시아의 거울 — 일본, 중국, 인도가 먼저 걸었던 길

한국 F1 드라이버
한국 F1 드라이버 · 사진 Mitja at w:Picasa,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한국이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을 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은 어떻게 해냈을까.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F1 드라이버를 배출한 나라다. 나카지마 사토루가 1987년 로터스 팀으로 F1 데뷔를 했고, 이후 아구리 스즈키, 다케우치 타카마사, 요코 카타야마, 그리고 2000년대의 사토 타쿠마까지 일본은 꾸준히 F1 그리드에 드라이버를 올려놓았다. 일본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힘은 토요타, 혼다, 닛산으로 대표되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강력한 모터스포츠 지원 문화에 있었다.

중국은 2012년 마칭화가 HRT 팀에서 세 번의 그랑프리에 출전하며 중국인 최초 F1 드라이버가 되었다. 비록 성적 면에서는 아쉬운 기록을 남겼지만, 그 상징성은 거대했다. 중국은 이미 F1 그랑프리(상하이 인터내셔널 서킷)를 개최하는 시장이었고, 그 상업적 가치가 드라이버 배출로 연결된 측면이 있다. 인도도 나라인 카르티케얀이 2005년부터 F1에 출전하며 인도 모터스포츠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 사례들이 한국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시아에서 F1 드라이버가 나오는 공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강력한 자국 자동차 산업의 지원, F1 그랑프리 유치를 통한 시장 가치 확보,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맞물려 만들어지는 드라이버 육성 투자. 한국은 한때 이 공식에 가장 근접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전라남도 영암에서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이 F1 그랑프리를 개최했고, 당시 ‘한국인 F1 드라이버를 만들어보자’는 목소리도 실제로 있었다.

코리아 그랑프리와 한국인 드라이버의 꿈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전남 영암에서 열린 코리아 그랑프리는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이벤트였다. 당시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F1 팀 시트를 13개로 늘리는 방향과 맞물려 한국인 드라이버를 시트에 앉히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랑프리 자체가 2013년 이후 중단되면서 그 꿈도 함께 흐릿해졌다.

한국인 드라이버가 나오는 시점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브런치 모터스포츠 칼럼니스트 / ‘언제쯤 한국인 F1/WRC 드라이버가 나올 수 있을까?’ 중

영암의 꿈, 그리고 사라진 그랑프리

2010년 10월, 전라남도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 F1 머신들이 처음으로 포효했다. 세바스티안 베텔이 우승했고, 한국 팬들은 처음으로 자국 땅에서 F1의 굉음을 직접 들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이들이 이것이 지속적인 모터스포츠 붐의 시작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흥행 부진과 재정 문제가 겹치면서 코리아 그랑프리는 2013년을 끝으로 캘린더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랑프리의 소멸은 단순히 레이싱 이벤트 하나를 잃은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F1 그랑프리의 개최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스폰서십과 마케팅 예산을 모터스포츠에 쏟아붓는 직접적인 이유가 된다. 일본의 혼다가 F1에 수십 년간 막대한 투자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일본 그랑프리가 스즈카에서 꾸준히 열리며 국내 팬들에게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 지속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물론 코리아 그랑프리가 소멸한 원인을 단순히 관심 부족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서킷 주변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 지나치게 높았던 입장료, 레이싱 주변 문화(팬존, 머천다이징, 연계 콘텐츠 등)의 미성숙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교훈은 한국이 언제가 다시 F1 그랑프리를 유치하려 할 때 반드시 되짚어야 할 과제들이다.

‘그랑프리의 소멸은 드라이버 탄생의 가능성도 함께 희미하게 만들었다.’

전기차 시대와 포뮬러 E — 새로운 판이 열리는가

한국 F1 드라이버
한국 F1 드라이버 · 사진 KSP Reportages,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지금 자동차 산업은 전환점에 있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모터스포츠의 지형도 바뀌고 있다. 포뮬러 E는 이 흐름 속에서 탄생한 전기차 기반의 단일 포뮬러 시리즈로, F1의 절대적 위상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점점 더 많은 자동차 제조사와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포르쉐, 재규어, 닛산, DS 페스케, 앤도라 등 다수의 제조사가 포뮬러 E에 참전 중이며, 현대차 그룹은 기아 브랜드로 포뮬러 E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현대자동차 또는 기아가 포뮬러 E에 공식 참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한국인 드라이버 배출의 직접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브랜드가 달린 머신을 타는 드라이버에게 강한 상업적 이해관계를 가지며, 특히 내수 시장 공략을 위해 자국 드라이버를 발굴·지원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혼다가 다카마 사토를 지원하고, 르노가 로맹 그로장을 키운 것처럼, 현대차가 한국인 드라이버를 아카데미 차원에서 육성한다면 그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아직 가정의 영역이다. 그러나 전기차 전환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모터스포츠의 판을 새로 짜고 있는 지금, 이 기회의 창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한 블로거의 글처럼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있지만, 반대로 이 전환기야말로 새로운 나라의 드라이버가 등장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시점이기도 하다. 아직 전기 레이싱의 ‘전통 강자’가 굳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싹이 없는 건 아니다 — 국내에서 조용히 자라는 씨앗들

암울한 현실 속에도 조심스러운 희망의 씨앗은 있다. 국내에도 모터스포츠를 진지하게 꿈꾸는 젊은 드라이버들이 존재한다.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를 중심으로 국내 카트 대회와 포뮬러 대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일부 어린 드라이버들은 국내에서 기초를 쌓은 뒤 해외 시리즈에 도전하는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완전히 진공 상태는 아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F1 아카데미 같은 다양성 강화 프로그램, F1의 아시아 시장 공략 강화 전략이 겹쳐지면서, 아시아 출신 드라이버에 대한 관심이 F1 팀 내에서도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들이 감지된다. F1 자체가 다양한 국적의 드라이버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한국인 드라이버에게도 나쁘지 않은 배경이다. 스포츠의 글로벌 확장 전략이 선수 다양성 확대와 맞물려 돌아가는 지금, 한국이라는 시장은 F1 입장에서도 무시하기 힘든 규모다.

결국 씨앗을 키우는 것은 제도와 돈만이 아니다. 한 명의 부모가 아이를 카트 시트에 앉히는 용기, 한 기업이 어린 드라이버의 이름 옆에 로고를 다는 결단, 그리고 모터스포츠가 ‘꿈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이 세 가지가 함께 움직일 때, 그 씨앗은 비로소 자랄 수 있다.

KARA — 대한자동차경주협회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는 국내 모터스포츠의 주관 기관으로, 카트부터 투어링카, 포뮬러 카 대회를 운영한다. 체계적인 엘리트 육성 프로그램의 확충이 한국 드라이버의 국제 무대 진출을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한국 렌즈 — 쿠팡플레이 세대가 열쇠다

지금 한국에서 F1을 보는 세대는 과거와 다르다. 쿠팡플레이를 통해 F1을 처음 접한 10대와 20대 초반은, F1을 ‘멀리 있는 외국 스포츠’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응원하고 관여하는 콘텐츠로 소비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드라이브 투 서바이브(Drive to Survive)’의 한국어 자막 시청자 수 증가, 유튜브의 F1 하이라이트 채널들의 한국어 댓글 폭발은 이 세대의 에너지를 잘 보여준다. 이 팬덤은 단순히 구경꾼이 아니라, 언젠가 ‘내가 직접 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집단이기도 하다.

바로 이 세대에서 미래의 한국 F1 드라이버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크다. 만약 지금 13~15세의 한국 팬이 F1에 열광하며 카트를 시작한다면, 그 아이가 F2 레벨에 도달하는 것은 2030년대 초반이다. 그리고 F2에서 F1 팀의 눈에 들 만한 성적을 낸다면, 2030년대 중반에 그리드에 오를 수 있다. 이것은 비현실적인 공상이 아니다.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한 드라이버들이 세계 각지에 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카트 인프라를 늘리고, 청소년 드라이버 발굴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업들이 어린 드라이버를 후원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F1 그랑프리 재유치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나도 F1 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는 사회적 공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은 그 공기 속에서 시작될 것이다.

한국 팬의 시선

쿠팡플레이의 F1 중계는 한국 모터스포츠 팬덤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윤재수 해설위원의 목소리와 함께 심야에 F1을 시청하는 한국 팬들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으며, 포뮬러 원은 이제 일부 마니아만의 취미가 아닌 메인스트림 스포츠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흐름은 2010년대 영암 코리아 그랑프리 시절의 일회성 열기와는 결이 다르다. 지속적인 중계 노출이 팬덤을 단단하게 만들고, 그 팬덤이 다음 세대의 드라이버 지망생을 만들어낸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같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를 보유한 한국이 모터스포츠 지원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국내 카트·포뮬러 인프라가 지금보다 한 단계 성숙해진다면, 한국 F1 드라이버의 탄생은 상상 속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그 가능성의 불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심야 F1 중계 화면 앞에서 눈을 빛내는 어린 팬의 가슴속에 있다.

그리드 위의 태극기는 아직 없다. 하지만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법은 없다. 역사는 언제나 ‘처음’이 있었고, 그 처음은 누군가의 무모해 보이는 꿈에서 시작됐다. 한국 모터스포츠가 풀어야 할 숙제는 분명하고, 그 무게도 가볍지 않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F1 중계 화면에 눈을 고정하며 ‘나도 저 그리드에 서고 싶다’고 속삭이는 한국의 어린 드라이버 지망생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꿈을 비웃지 않고, 그 꿈이 자랄 수 있는 땅을 조금씩 일구어 가는 것이다. 언젠가 F1 중계 화면에 한국어 이름 세 글자가 드라이버 명단에 뜨는 날, 그것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투자가 만들어낸 결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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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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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F1 드라이버 — Tokumeigakarinoaoshima,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한국 F1 드라이버 — Morio,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한국 F1 드라이버 — Mitja at w:Picasa,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 한국 F1 드라이버 — KSP Reportages,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