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F1 서킷들: 한때 전설이 달렸던 그 도로들
속도는 기억보다 빠르지만, 사라진 서킷은 그 어떤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한때 챔피언들이 목숨을 걸고 달렸던 도로가 지금은 주차장이 되거나 잡초 속에 묻혀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은 것일까. 이 글은 시간이 지워버린 F1 서킷들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이 글은 지도에서 지워진 F1 서킷들을 추적한다. 챔피언십이 시작된 1950년부터 안전 규정이 강화된 1970년대까지, 수십 개의 트랙이 그랑프리를 치르고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어떤 서킷은 비극적인 사고 뒤에 문을 닫았고, 어떤 서킷은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렸으며, 또 어떤 서킷은 단지 예산이 바닥나 잡초에 뒤덮혔다. 그리고 멀리 한국에서도, 작은 서킷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며 모터스포츠의 꿈을 묻어버렸다.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는 일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우리가 속도와 함께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속도의 시대가 낳은 공도 서킷: 왜 그토록 위험하고 아름다웠나
F1 세계 챔피언십이 공식 출범한 1950년, 그랑프리 레이싱의 무대는 지금과 판이했다. 전용 경주장보다 일반 공도를 임시로 막아 만든 서킷이 대세였다. 프랑스의 랭스-구에, 이탈리아의 페스카라, 스페인의 페드랄베스… 이 서킷들은 평범한 마을 도로와 농경지 사이를 고속으로 가로질렀다. 관중은 불과 수 미터 앞에서 레이스를 지켜봤고, 드라이버들은 가드레일 하나 없는 구간에서 시속 200km를 훌쩍 넘겼다.
그 시절 서킷 설계의 원칙은 단순했다. ‘빠를수록 좋다.’ 랭스-구에 서킷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포플러 가로수길과 국도를 엮어 만든 트랙으로, 긴 직선 구간 덕분에 당시 최고속을 자랑했다. 페스카라 서킷은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 페스카라 외곽을 뱅뱅 도는 약 25.8km의 괴물 같은 트랙이었다. 현재 F1 최장 트랙이 약 7km 안팎임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가늠이 간다.
이 공도 서킷들은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봄볕에 빛나는 프로방스의 올리브밭 사이로 페라리가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장면, 아드리아해의 파도 소리와 엔진 소리가 뒤섞이던 페스카라의 해안 구간. 그 낭만은 현대 F1이 절대 재현할 수 없는 종류였다. 하지만 그 낭만의 이면에는 수십 명의 드라이버와 관중이 목숨을 잃은 비극이 쌓여 있었고, 결국 세계는 속도보다 생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빠를수록 좋다’는 원칙이 낳은 공도 서킷들은, 속도와 죽음을 동시에 파는 무대였다.
랭스-구에: 샹파뉴의 가로수길이 그랑프리 무대였던 시절

프랑스 랭스 외곽, 지금도 그 도로를 달리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그냥 평범한 국도다. 하지만 1950년부터 1966년까지 이 길은 프랑스 그랑프리의 심장이었다. 랭스-구에(Reims-Gueux) 서킷은 N31 국도와 RD27 지방도로를 삼각형 모양으로 연결해 만든 공도 서킷으로, 긴 직선 구간 두 개와 타이트한 헤어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서킷에서 팬지오는 우승했고, 호손은 사투를 벌였으며, 짐 클라크는 그만의 유려한 주행 라인을 새겼다. 특히 1950년대 후반 메르세데스-벤츠와 페라리, 마세라티가 삼파전을 벌이던 시기, 랭스의 직선 구간에서 펼쳐진 슬립스트리밍 배틀은 오늘날의 DRS 추월보다 훨씬 원초적이고 긴장감 넘쳤다. 직선 끝에서 제동 포인트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순위가 뒤집혔다.
그러나 서킷의 마지막은 조용했다. 1966년 잭 브라밤이 마지막 프랑스 그랑프리 우승을 랭스에서 가져간 뒤, 프랑스 그랑프리는 이듬해 클레르몽-페랑으로 이전했다. 안전 기준을 맞추기 위한 개보수 비용이 너무 컸고, 공도를 계속 폐쇄하는 데 대한 지역 반발도 있었다. 그렇게 랭스-구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현재 피트 레인 건물 일부는 남아 있지만, 반쯤 무너진 채 잡초에 뒤덮여 있다. 그 폐허를 찾아가는 모터스포츠 팬들의 발길이 이따금 이어지는데, 그들이 찍어 올린 사진에는 공통적으로 묘한 쓸쓸함이 배어 있다.
랭스-구에의 피트 레인은 지금도 남아 있다. 반쯤 무너진 채, 잡초 속에서.
페스카라와 페드랄베스: 지중해가 품었던 두 개의 괴물 트랙
페스카라 서킷(Circuito di Pescara)은 1957년 단 한 번 F1 그랑프리를 치렀지만, 그것만으로도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이탈리아 아드리아해 해변 도시 페스카라 외곽을 산과 해안 사이로 누비는 약 25.8km의 이 트랙은, 밀레 밀리아 등 전전(戰前) 로드레이스 시대부터 이미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었다. 1957년 페스카라 그랑프리에서 스털링 모스가 바네르올로 마세라티를 몰고 우승했고, 팬지오가 그 뒤를 따랐다.
25km가 넘는 트랙을 상상해보라. 단순 계산으로 한 바퀴 도는 데 10분 가까이 걸린다. 관중은 코스의 일부 구간에서만 레이스를 볼 수 있었고, 드라이버들은 마을 골목과 급경사 산길을 무방비 상태로 달렸다. 페스카라는 아름다웠지만 너무 위험했다. 단 한 번의 F1 그랑프리 이후 더 이상 F1 카가 이 도시를 달리지 않았다. 오늘날 페스카라는 이탈리아의 평범한 해양 관광도시로, 그 도로 위에 레이스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페드랄베스 서킷(Circuit de Pedralbes)도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1951년과 1954년, 단 두 차례 F1 그랑프리를 개최했던 이 공도 서킷은 바르셀로나 부촌 페드랄베스 지구의 아베니다 디아고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팬지오가 1951년 알파 로메오로 우승했고, 1954년엔 페라리의 마이크 호손이 정상에 섰다. 하지만 이 서킷 역시 안전 기준과 도심 공도 사용의 현실적 어려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 페드랄베스의 도로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일상 대로다. 레이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몬자의 잃어버린 뱅킹 코너: 이탈리아의 심장에 새겨진 상처

몬자(Autodromo Nazionale Monza)는 살아 있는 F1 서킷이다. 1950년 F1 챔피언십 개막 시즌부터 현재까지 거의 매년 이탈리아 그랑프리를 개최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F1 서킷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아는 몬자와 1960년대까지의 몬자는 같은 이름을 쓰는 다른 트랙에 가깝다. 그 차이의 핵심에 ‘뱅킹 코너’가 있다.
몬자 뱅킹 코너(Curva Sopraelevata)는 서킷 내부에 설치된 가파른 경사면 오벌 코스였다. 마치 NASCAR 오벌 트랙의 일부를 떼어다 붙인 것처럼, 급경사의 콘크리트 벽면 위를 고속으로 달리는 이 구간은 시각적으로도 충격적이었다. 1950년대에는 뱅킹 코너를 포함한 풀 코스와 뱅킹 제외 코스를 번갈아 사용했지만, 1960년대 들어 뱅킹 코너의 노면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고속 주행 중 타이어가 분리되거나 차체가 불안정해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결국 1969년 이탈리아 그랑프리를 마지막으로 뱅킹 코너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도 몬자 서킷 내부에는 뱅킹 코너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삐죽 솟아 있는 이 콘크리트 경사면을 서킷 관람 투어 중에 직접 볼 수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면 균열과 이끼로 뒤덮인 표면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한다. 몬자의 뱅킹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더 이상 아무도 달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형태의 ‘사라진 서킷’이라 할 수 있다.
몬자의 뱅킹 코너는 철거되지 않았다. 그냥 버려졌다. 그 콘크리트는 지금도 숲 속에 서 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달릴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할 권리는 없었다.
— 재키 스튜어트, 서킷 안전 캠페인 관련 발언 (취지 인용)
로카리, 아인스링, 그리고 기억 속의 독일: 뉘르부르크링 너머의 이야기
독일 모터스포츠의 상징은 뉘르부르크링이다. ‘녹색 지옥’이라는 별명처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는 약 20.8km에 달하는 구불구불한 산악 코스로 수십 년간 F1 그랑프리를 개최했다. 그러나 1976년 니키 라우다가 이 서킷에서 화재 사고로 생사를 넘나든 뒤, F1은 노르트슐라이페를 버렸다. 현재의 뉘르부르크링 그랑프리 서킷은 노르트슐라이페 인근에 새롭게 건설된 별도의 단축 코스다. 레전드들이 달리던 ‘진짜’ 뉘르부르크링은 더 이상 F1의 무대가 아니다.
스위스의 베른 근교 브레미가르텐(Bremgarten) 서킷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50년과 1954년 스위스 그랑프리를 개최했던 이 숲 속 공도 서킷은, 1955년 르망 참사 이후 스위스가 모든 모터레이싱을 법으로 금지하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스위스의 모터레이싱 금지법은 2022년에야 완화되었으니, 브레미가르텐은 무려 67년간 레이스 없는 서킷이었던 셈이다. 숲 속 도로는 지금도 남아 있지만, F1이 돌아올 가능성은 요원하다.
네덜란드 잔드포르트(Zandvoort)는 2021년 부활하며 새로운 챕터를 쓰고 있지만, 1985년부터 2020년까지 35년간은 F1 캘린더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한때 짐 클라크, 재키 스튜어트, 니키 라우다가 달렸던 이 해안 모래언덕 서킷은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막스 베르스타펜 열풍이 불어온 네덜란드의 F1 열기 덕분에 화려하게 귀환했다. 잔드포르트는 ‘사라진 서킷이 돌아온 드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된다.
안전의 역사: 재키 스튜어트가 바꾼 세계, 그리고 트랙이 치른 대가
1960년대 후반, 재키 스튜어트(Jackie Stewart)는 F1에서 가장 용감한 일을 했다. 빠르게 달린 것이 아니라, 느리게 달리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었다. 당시 F1 드라이버들의 사망률은 충격적이었다. 1960년대 그랑프리 드라이버는 통계적으로 75레이스당 한 번꼴로 사망했다는 추산이 있을 정도였다. 스튜어트는 그랑프리 드라이버 협회(GPDA)를 통해 서킷 안전 기준 강화를 집요하게 요구했고, 이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의 규정 개혁으로 이어졌다.
이 개혁은 트랙들을 갈랐다. 개보수 비용을 감당하거나 새로운 안전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서킷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서킷은 캘린더에서 탈락했다. 랭스-구에, 페스카라, 페드랄베스처럼 도심 공도에 의존하던 서킷들은 물리적으로 개조 자체가 불가능했다.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는 ‘안전 개선이 불가능한 트랙’이라는 판정을 사실상 받은 셈이었다. 스튜어트가 자신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운 결과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트랙의 죽음이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안전 기준 강화 이후 F1의 사망 사고는 극적으로 줄었다. 1994년 아일톤 세나의 사고는 그 진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트랙들이 사라진 것은 슬프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더 많은 드라이버들의 살아 있는 인생이었다. 우리가 사라진 서킷을 기억하는 방식은, 그 위에서 숨진 이들에 대한 기억과 함께해야 한다.
스튜어트가 싸운 결과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트랙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 대신 드라이버들의 삶이 살아남았다.
한국 렌즈: 춘천모터파크와 사라진 꿈들
한국은 흔히 ‘모터스포츠의 불모지’라 불린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불모지가 된 것이 아니라, 불모지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여러 레이싱 서킷이 존재했다. 그 중 하나가 강원도 춘천의 춘천모터파크다.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이 서킷은 한때 지역 모터스포츠 인프라의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2010년대 중반 이후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 모터스포츠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서킷 인프라의 지속 가능성이다. 서킷을 짓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안전 기준 유지, 노면 관리, 보험, 운영 인력, 그리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관중과 레이스 유치. 이 모든 요소가 맞물리지 않으면 서킷은 빠르게 쇠락한다. 한국에서 운영이 중단된 서킷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이 순환 고리가 어느 한 지점에서 끊겼다는 것이다.
국내 미디어에서도 모터스포츠는 오랫동안 소외된 장르였다. 물론 창원 F3 독점 중계를 따낸 방송사처럼, 모터스포츠에 진심을 쏟은 사례들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률의 논리 앞에서 그 진심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다. 2010년에 개장한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영암)이 단 4번의 한국 그랑프리를 치르고 F1 캘린더에서 사라진 것도, 인프라와 콘텐츠 생태계가 동반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설의 서킷들이 유럽과 미주에서 사라진 이유와 한국에서 서킷이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겹쳐진다.
폐허의 미학: 사라진 서킷을 찾는 사람들
흥미롭게도, 사라진 서킷을 찾아다니는 문화가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어반 익스플로링(urban exploring)’의 모터스포츠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이 활동에서, 팬들은 폐쇄된 서킷의 잔재를 직접 발로 밟으며 사진과 영상을 기록한다. 랭스-구에의 무너져가는 피트 건물, 몬자의 뱅킹 코너 콘크리트, 심지어 르망의 구(舊) 물셰 코너 흔적까지. 이 탐험가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역사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며 움직인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는 모터스포츠 역사 보존 단체들이 활동하며, 폐쇄된 서킷의 잔재를 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랭스-구에는 지역 역사 단체들이 피트 건물 보수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크라우드펀딩까지 시도한 바 있다.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하더라도, 그 자리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려는 노력인 셈이다.
디지털 시대는 이 기억 보존에 새로운 도구를 더했다. 당시 서킷의 공중 사진, 레이스 필름, 드라이버 인터뷰 등이 디지털화되어 전 세계 팬들과 공유되고 있다. 레이싱 시뮬레이터 게임에서는 랭스-구에나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의 1960~70년대 버전을 재현한 모드가 제작되기도 했다. 현실에서 사라진 트랙이 가상의 세계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서킷의 대체물이 될 수는 없겠지만,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드는 방식으로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현실에서 사라진 트랙은 가상의 세계에서 되살아난다.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드는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한국 팬의 시선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이 2012년 한국 그랑프리를 마지막으로 F1 캘린더에서 사라졌을 때, 많은 팬들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영암 서킷은 F1의 귀환 없이 국내 레이스 무대로만 활용되고 있다. 춘천모터파크를 비롯한 소규모 서킷들의 운영 중단은 단순히 특정 시설의 폐쇄가 아니라, 한국 모터스포츠 생태계의 씨앗이 심어지기도 전에 뽑혀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유럽의 전설적 서킷들이 안전 기준과 비용의 벽에 무너졌다면, 한국의 서킷들은 관심과 생태계의 부재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와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드라이버들, 팀 관계자들, 그리고 팬들이 있기에, 한국 모터스포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킷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만들어지지만, 살아남는 것은 그 위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이다. 랭스의 포플러 그늘 아래서 팬지오가 더위를 식히던 장면, 페스카라 해안 코너를 스털링 모스가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던 장면, 몬자 뱅킹 위에서 하늘과 맞닿을 것 같던 속도감. 그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더 이상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사라진 서킷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달리는 이 트랙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리운 이름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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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 F1 서킷 — https://circuitsdelegende.com/old/gpmreimsphoplan1959gf.jpg,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 F1 서킷 — Unknown author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F1 서킷 — Jiří Žemlička,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